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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외침

무기력함에 분노한다.

by 태권마루 2020. 3. 25.

20대에는 여자 만나고 놀러도 다니고 용돈 번다고 학교 수업 빠지는 게 다반사였다. PC방 게임에 빠져 낮과 밤이 뒤바뀌어 폐인 같은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때는 백수처럼 지내도 큰 불안함이나 죄책감이 없었다.

2020년 2월 24일부터 도장 문을 걸어 잠그고 지금까지 나는 반백수로 살고 있다. 종일 같은 뉴스를 보고 우리 동네 감염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찾아본다. 다른 도장이나 학원 하시는 분들과 걱정만 나누고 이건 어떻게 할 거냐 너는 어떻게 할 거냐 채팅창에서 걱정만 늘어놓다가 하루가 다 간다.

그렇게 나는 무기력하게 한 달을 보내고 있다. 뉴스에 나온 어떤 관장처럼 택배나 대리운전이라도 하러 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고 쉬는 동안 몸이 둔해지지 않게 부족했던 기술을 더 수련하며 정진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면서도 나는 집 안에 머물고 있다.

"이불 밖은 위험해~" 이 시국에 밖에 돌아다니다 감염이라도 되면 그나마 나중에 도장을 열어야 할 때 열지 못하고 감염되었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그야말로 도장은 끝이라고 생각하니 예전 그 시절 폐인처럼 집에 내내 처박혀 있다. (그래서 이렇게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블로그도 하는 것이다)

이 와중에 어느 협회에서 얼마를 주고 어느 지역은 얼마를 준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지금처럼 도장이 어려운 시기에 긴급자금을 받을 때는 단비 같은 얘기겠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 아닐 수 없다. 단발성 대책으로는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도 없고 사실 큰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협회를 향한 비난을 피하기 위한 것은 방패는 아닐까?

그렇다고 딱히 다른 좋은 방도도 생각나지 않는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하는데, 다들 앉아서 협회는 뭐 하고 있냐는 소리만 할 뿐이다. 그렇다고 유치원연합회처럼 힘을 모으지도 않는다. 뭉칠 줄 모르고 모두가 납작 엎드려 눈치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다시금 뼈저리게 느낀다. 협회는 무능하고 사범들 하나하나는 무식하고 겁쟁이라 나서지도 뭉치지도 못한다. 그저 학부모들을 무슨 그럴싸한 말로 잡아둘지, 혀 놀릴 궁리만 한다.

수많은 도장과 사범들이 있고 분명 회비는 나가고 있는데, 우리에게는 피부에 와닿는 콘트롤 타워가 없고 우리를 대표해 뭔가를 주장하고 요구해주는 수장이 없다. 이런저런 연수나 심사 때 가면 높은 단상에 양복 입고 앉아 있던 분들은 다 뭘 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도장을 쉬어야 할지, 언제 문을 열어야 할지, 주변 학원들 눈치만 보고 있고 쉬는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정부 지원은 어떻게 받아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나 자신의 무기력함에 다시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다.

학교에 가지 않는 우리 아들은 지금이 좋다고 한다. 나도 학창 시절이었으면 좋겠다. 가장이 된 지금은 돈을 벌지 못하니 부끄럽고 사범으로써 도복을 입지 못하니 아무것도 세상의 먼지 같은 나 자신에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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