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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외침

OO대학교 태권도 체육관(?)

by 태권마루 2010. 11. 16.

대학에서 예체능 계열은 특별한 재능이 있는 학생들이 지원하기 때문에 늘 인기가 높다.

학창 시절 반에서 운동 좀 한다는 애들이 서너 명씩은 있을 테니 체육 계열학과로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은 굳이 경쟁률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음이다. 특별히 다른 공부를 하지 않아도 친구들과 놀고 운동하며 개발된 운동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운동에 관심이 있었던 학생들은 대학 진학에 있어 주저 없이 체육(계열)학과를 선택하게 된다.

1982년 용인대학교에 최초로 태권학과가 설립되었다. 이후 태권도학과는 꾸준히 늘어났고, 이제는 체육(계열)학과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더 인기가 높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운동을 잘하는 학생들보다 태권도를 수련한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두 가지가 겹치는 경우가 많겠지만, 실기전형에서 체육(계열)학과는 기초체력 위주로 태권도학과는 단증, 입상실적, 그리고 태권도 자체를 보기 때문이다.

아무튼 점차 대학을 나온 지도자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사범의 경우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적지 않을까 싶다.

태권도학과에 진학한 학생들은 아마도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고 사범 생활을 거쳐 도장을 개관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 자신이 대학의 태권도학과나 체육학과를 졸업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요즘은 OO대학교 태권도장이라는 간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부산을 예로 들기 위해 부산시태권도협회 홈페이지에서 관내 도장 수가 가장 많아 보이는 해운대구를 살펴보았다. 대략 90여 개의 도장 중 12곳 정도가 직간접적으로 출신대학을 상호로 내걸고 있었다. 쉽게 10% 정도라고 보자.

태권도학과가 많지 않은 부산이니까 그렇지 수도권은 그 비율이 훨씬 높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역시 내가 파악할 수 있는 부산을 예로 들어보겠다.



사례 1)
부산에 태권도학과가 있는 대학은 동아대학교와 동의대학교 두 곳뿐이다. 동의대학교는 2006년 1월에 태권도학과를 개설하였고 동아대학교는 그와 비슷하거나 조금 빠른 것으로 알고 있다. 졸업생 중 태권도장 쪽으로 진출하지 않는 학생과 군대를 다녀온 학생을 고려하면 아직은 두 대학의 태권도학과 졸업생 수가 아직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두 대학의 간판을 걸고 있는 도장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례 2)
A 관장은 도장이 잘 안 되자 자신의 출신 대학 간판을 걸고 도장을 운영했다. 그러나 끝내 운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도장을 인수했다. 새로운 관장 B는 협회 등록비를 아끼기 위해 기존 관장의 명의를 그대로 이용했고, 도장명도 그대로 유지했다.
사실상 인수했으나 명의는 다른 것이다. 새로 인수한 관장은 이 대학 출신이 아니거나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

사례 3)
수련인구가 감소하고 태권도학과 졸업생이 늘어나면서 기존 관장들은 새로운 것을 찾아야 했고 학위도 취득했으면 했다. 이것을 간파한 대학에서는 평생교육원과 학점은행제를 이용하여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많은 태권도 지도자들을 끌어모았다.
평생교육원에서는 지도자과정이라는 이름하여 1년여 교육 후 수료증을 주고 OO대학교 동문 도장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학점은행제는 위의 과정과는 조금 다른 것으로 학사 학위 취득이 목적인데 '사례 1'에서와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학점은행제를 통해 아직 학위를 받지 않았음에도 대학 명칭을 사용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진학한 대학! 선후배, 동기들과 함께 땀 흘리며 젊은 날의 대부분을 보냈던 대학에 대한 소속감을 표현하기 위해, 그것이 자신의 분야와 사업장을 홍보하기에 더욱 적합하기에 출신 대학의 간판을 내거는 것은 나무랄 부분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악용되고 있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OO 대학의 OO 학과 출신이 아님에도 그런 것처럼 하고 있는 것은 고객(수련생과 학부모)에 대한 사기가 아닐까?

태권도학과가 없는 명문사학 Y 대학에서는 평생교육원을 통해 'Y 대학교 태권도 최고위' 과정을 개설해 해마다 많은 수료자를 배출하고 있다. 이 과정을 나온 지도자들은 'Y 대학교 최고위 동문 도장'이라는 이름 아래 해당 대학의 CI로 차량과 도장을 뒤덮고 마치 그 대학 졸업생인 양 홍보하고 있다.
물론 해당 대학에서 가입비 등을 통해 사용에 대한 문제는 없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착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굳이 대학 출신이 아니고 1년 수료 과정이라고 나서서 얘기할 수도, 필요도 없으니.. 이것이야 말로 교묘한 함정이고 상술이 아닐까?

대학을 졸업하려면 통상적으로 140학점가량을 취득해야 한다. 학점은행제를 역시 비슷한 학점을 취득해야 학위를 수여 하는데 한 대학에서 보통 84학점인가를 이수하면 그 대학 명의의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학사학위를 받기도 전에 해당 대학의 간판을 내 거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특정 대학명을 상호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대학의 동문이며, 사용에 대한 승인이 있어야 함에도 그러한 과정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등판에 OO대학교라고 쓰인 도복을 입고 가는 아이를 보았다. '저 도장의 관장은 저 대학 출신이 아닌데?' 생각했고, 설령 그 대학 출신이 맞다고 하더라도 왜 수련생의 도복에 도장 명이 아닌 OO대학교라고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진학해서 열심히 배우고 졸업한 정상적인 동문이야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아니면서 그런 듯 행동하는 소수의 태권도 지도자들로 인해 그들과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며, 또한 그들의 그런 행동에 눈살 찌푸려진다.

내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거나 그런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면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OO대학교'라고 새겨진 체육복을 하나 입기 위해 재수까지 해가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했는데 아직 세상 물정도 모르는 꼬맹이가 'OO대학교'라고 새겨진 도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보니 억울했다. 그 등판에 그 글자들은 단순한 광고라고 하기엔 그 글자를 얻기 위해 땀 흘린 사람만이 누려야 할 특권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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