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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일지

회비 깎아 달라는 말, 나는 무뚝뚝해서 듣기 싫다.

by 태권마루 2010. 2. 27.

언제인가 모 세미나에서 국내에서 관원 수가 가장 많다는 손성도 관장님의 강연을 들었다.
그때 나는 손관장님을 보면서 어쩜 저리도 말을 잘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화술과 처세술이 뛰어나고 임기응변에 능한 순발력을 지닌 분으로 어찌 보면 장사꾼처럼도 보였지만, 태권도를 가르친다는 것이 어찌 보면 태권도의 기술과 정신을 판다고도 볼 수 있으니 처음에는 달갑지 않게 여겼으나 점차 그의 재주가 부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사회 생황에서도 물론이지만, 태권도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큰 덕목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태권도 실력과 지식은 기본적인 덕목이지만 남들 앞에서 맛깔 나게 설명하고 가르칠 수 있는 재주는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다는 격이 아니겠는가....

나처럼 무뚝뚝한 사람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그런 것들이다. 사범일 때는 서비스 마인드의 부재로 학부모들에게 싹싹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 한 명이라도 관원을 더 모으고 붙잡고 있어야 하는 마당에 그런 재주가 없음이 참으로 안타깝다.

어제 수업시간에 한 학부형이 아들 딸을 데리고 상담하러 왔었다. 이번 학기에 줄넘기만 하는 특강을 하는데 수련생의 학부모로부터 소개받고 왔다는 것이다. 특강비는 5만 원인데 둘이 다 시키려고 하니 비싸다고 하셨다.

"아닙니다. 비싼 거 아닙니다. 하루 수업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하고 노력을 해야 하는데요... 절대 비싼 거 아닙니다. 다른 학원비랑 비교해 보십시오."

"뭐 줄넘기 그냥 돌리는데 뭐가 그래 비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컥 치밀어 올랐다. 나도 모르게 그만..... 또 예전처럼 말해 버렸다.

"어머님 단순히 줄을 넘는 거만 하는 거라 생각하셨으면 집에서 그냥 뛰라고 시키시면 되지 도장에 뭐하러 데리고 오셨습니까."

말하면서 이러면 안되는지 알면서도 끝내 뱉어 버렸다.

"집에서 시키면 안해서 억지로라도 시키려고 데리고 왔어요. 다른 데는 형제가 하면 다 할인되던데 안되나요?"

"수련생들은 형제 할인을 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특강은 수강료가 이미 저렴하고 다른 학생들과의 형평성 때문에 할인이 안됩니다."

끝끝내 할인해 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인하신 어머님은 할인 안 해주면 안 다니겠다는 뉘앙스로 몇 차례 더 얘기했고, 나는 안되는 건 안되는 거라는 식으로 대응했다. 끝내 약간 기분 상한 얼굴로 나가셨다.

정규수업도 아닌데 할인해 달라는 그 어머님이 미웠지만, 그보단 좀 부드럽게 거절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다. 앞으로 이런 비슷한 경우가 계속 발생할 텐데 조금이라도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여기면 화를 내는 성격이다 보니 늘 이렇게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온다. 딱딱한 것은 부러지는 법인데 말이다.

둘이니까 1만 원 할인해주면 9만 원을 벌 수 있다. 할인해 주지 않으면 0원이다. 하지만, 내가 마음을 더 잘 다스리고 말을 더 잘했더라면 10만 원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태권도를 지도하는 것을 떠나 상담을 하기에는 나는 어린 사범들보다 못한 것이다. 젠장...

아~ 제발 회비나 뭐 돈 내는 거 할인해달라고 좀 안 했으면 좋겠다. 해주자니 다른 사람들 눈치 보이고 안 해주자니 부드럽게 거절할 줄 모르고.... 나 같은 사람에게는 참 곤혹스러운 일이다.

아버님, 어머님들! 어려우신 것 잘 알지만 태권도 가서 제발 할인해 달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대부분의 태권도 지도자들 거절을 잘 못합니다. 그러다 결국 자기 자신만 손해를 입습니다. 다들 한 명이라도 관원을 더 모으려고 하지 회비를 올려서 돈 벌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회비가 터무니없이 비쌀 리 없다는 얘기지요.

저한테만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말아주세요.... 돈 못 버는 게 아쉬운 게 아니라 안된다고 말하는 게 너무나 어려워서 말입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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