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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일지

열혈남들과 한 판 붙다(?)

by 태권마루 2008. 12. 14.

요즘 우리 도장에 중·고·일반부가 늘어나고 있다. 내가 도장을 옮겨 오면서 가장 많이 빠져나갔던 부가 마지막 중·고·일반부가 아닐까 싶다. 잘 어울려주고 태권도 외적으로도 이것저것 많이 지도해주었던 앞전 사범과는 달리 태권도 위주로 수업하며 자유분방한 그들은 옥죄는 듯한 나의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둔 것이라 여긴다.
전 사범 시절 한때 40명까지도 올랐다던 마지막 부는 내가 왔을 때 10명 정도였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시점까지 10명 선을 유지하다가 지난여름부터 늘어나더니 이제 18명이 수련하고 있다. 현재 시점에는 20명을 넘어섰다. 최근 도장들의 추세를 본다면 대학 입시나 품새 선수 위주로 수련하는 도장들을 제외하고는 중·고·일반부 수련생의 수가 적지 않다고 본다.
도장이 작은 편도 아닌데 덩치 큰 사람들이 수련하니 비좁다고 느껴질 정도지만, 말도 잘 통하고 이해력도 빠르니 지도하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할 맛이 난다.

얼마 전 곧 대학 진학을 앞둔 예비 대학생들이 들어왔다. 다들 어릴 때 태권도를 했고 오래 쉰 만큼 몸은 많이 굳어있지만 아주 열심히 하는 녀석들이다. 쉬는 시간에는 서로 주고받으면서 실전 겨루기와 같은 장난을 친다.

어제 겨루기 수업이 있었다. 보호대를 착용하지 않고 가볍게 돌아가면서 자유 겨루기를 하려고 했다. 한 사람이 모자라 땀 좀 뺄 겸 해서 함께 했다. 녀석 중 2명은 나보다 키와 덩치가 크고, 한 명은 나와 비슷하다. 돌아가면서 가볍게 겨루기를 하다가 183cm가 넘는 친구와 만났다. 가볍게 하려고 했는데 녀석이 장난 비슷하게 로우킥을 날려왔다. 빡 소리가 나며 허벅지에 강하게 맞았다. 난 가볍게 웃으며 같은 방식으로 로우킥을 찼는데 무릎을 들어 올리며 정강이로 막아내는 것이 아닌가.... 태권도는 중학교 때까지 3단을 했고, 후에 킥복싱을 배웠다더니 나와 겨루기를 함에 있어 킥복싱의 로우킥을 찬 것이었다.
이쯤 되니 어쩔 수 없었다. 지난번 수련생 중 겨루기를 좋아하고 나보다 덩치가 큰 녀석과 사투(?)를 벌였듯이 난 또 한 번 실전 모드로 들어가야 했다.

대학을 앞둔 고3, 한창 피 끓어오르는 나이다. 고교 시절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떻게 하면 실전에 내가 아는 기술을 써볼까 고민하고 내 몸이 지칠 때까지 단련했던 시기다. 녀석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시기에 태권도의 실전성에 의문을 품고 극진 가라데를 수련했었으니..

이 친구들은 단순히 땀 흘리는 것 이상을 원한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좀 과격하지만 나는 실전처럼 상대해야 했다. 그것도 나는 태권도 사범이니만큼 태권도 기술만을 이용해서 말이다. 로우킥을 차는 척하다가 바로 얼굴로 돌려차기를 올렸더니 스텝으로 빠져 피하고 받아차기가 날아와서 뒤차기로 제압했다.

각자 자신의 상대와 가볍게 겨루기하던 수련생들이 모두 숨죽여 지켜봤다. 이쯤 되니 멈출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돌려차기를 빠져나가는 녀석을 따라가 내려 차기로 머리를 찍었다. 태권도화에 머리를 찍힌 녀석,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이미 녀석은 급격한 체력 저하를 보이고 있었다. 나 역시 오랜만에 땀 흘리는지라 체력이 바닥났지만 그래도 명색이 사범인데 힘든 내색할 수는 없었다. 일부러 팔팔한 척 스텝을 요리조리 밟았다. 체력이 소진된 녀석이 공격해 봐야 가볍게 막거나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녀석의 공격을 빠졌다가 받아차기로 마무리했다. 로우킥으로....
태권도 겨루기에서 로우킥을 사용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였다.

전의를 상실한 모습을 보고 이쯤에서 그만두고 자리를 이동하며 겨루기를 계속하다가 이번에는 나보다 조금 작지만, 게 중에 겨루기를 제일 잘 한다는 녀석과 만났다. 이 녀석도 인정사정없이 덤벼들었다. 나보다 키가 작다 보니 어렵지 않게 상대해줬지만 두 번에 걸친 격렬한 겨루기는 모든 수련생을 다시금 침묵하게 만들며 분위기를 험하게 변화시켜버렸다.
마지막 녀석이 나를 기다리는 눈치였지만 분위기상 겨루기를 그만하고 다른 운동을 전환했다. 다들 녹초가 되었다. 사범이 땀 흘리며 격렬하게 함께 운동했기에 모두 게을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음 겨루기 시간부터 녀석들은 나와 상대하기 꺼릴 것이고, 사범님을 평소에 쉽게 여기지  못할 것이다. 자신들의 생각보다 무참히 깨졌으니 말이다.

처음, 이 도장에 왔을 때 중·고·일반부 아이들의 수업 태도가 참 마음에 안 들었다. 수년간 자신들을 지도해 준 정든 뛰어난 사범님이 가시고, 이상한 놈이 왔으니 말이다. 다들 겨루기 대회에서 메달도 많이 따 본 녀석들.... 겨루기 시간만 되면 나와 붙어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때마다 나는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부드럽게 호흡하는 척하며 조금은 잔인하게 상대해야 했다. 그래도 그땐 나보다 다들 작아서 상대하기 수월했는데 언제부턴가 나보다 큰 녀석들이 많아져 버렸다. ㅜ.ㅜ

중학생들은 아직 어려서 사범님과의 겨루기를 어렵게 생각하고, 나이 좀 있는 일반부들은 겨루기 자체를 기피한다. 고등부나 대학부들은 대체로 겨루기를 좋아하고 사범님과 붙어보기를 원하는 경향이 많다. 체격이 비슷하고 도장 안에는 자신의 상대가 많지 않으니 말이다.

이렇게 내 경험에 의하면 고등부, 대학부 층을 흡수하려면 실전성이 많이 가미된 겨루기 위주의 훈련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사범이 지면 안 된다. 자신에게 얻어맞는 사범에게 배우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사범 자신에게도 큰 정신적인 타격을 주지 않을까 싶다.

태권도는 무도, 무술, 무예라고 불린다. 여기서 그것들의 사전적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겠지만 근본적으로 상대에게 이기기 위한 격투기가 아니겠는가.. 최소한 젊은 사범들은 겨루기에 있어서만큼은 상대에게 지지 않을 기량을 갈고닦아야 할 것이다. 어린아이들만 상대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우리 도장에 20살 넘는 성인 수련생이 10명이 있다. 그중 남자가 6명인데 모두 겨루기를 좋아하며 처음에 나에게 적극적으로 도전해왔다. 성인 수련 층을 겨냥하고자 하는 사범이 있다면 실전 겨루기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열혈남아들 덕에 오랜만에 땀 흘려서 좋았고, 옛 기억을 떠올리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면 안 된다는 부담감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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