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공무술의 탄생배경 :: 2007/10/07 03:59특공무술의 탄생배경 그래서 1세대 제자들은 대부분 전북 익산출신들이 많다. 박노원님과 서승재님(현 국제)도 마찬가지로 익산분이다 자동소총수로 있었는데, 경보병부대 요원들은 태권도와 유술(유도) 권투 레슬링 등에서 가장 공격적인 품세만 골라서 만든 ‘격술’(북한판 특공무술)을 단련하고 있었다. 이씨는 9사단 경보병대대원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던 격술 고수였다. 압도적인 우세로 전승을 거뒀다. 정보당국은 이씨가 보여준 격술이 정찰국과 교도대 등 인민군 특수 부대는 물론이고 노동당 작전부 요원 등에게도 보급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 발차기 위주의 태권도로는 손기술을 중시하는 인민군 격술을 제압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1978년 6월 대 테러부대를 창설하게 되었다. 이 부대는 당시 전국 무술의 대가 중 우수한 기량을 가진 무술인을 개별적으로 초빙하여 심사한 결과, 장수옥님을 606부대 전임 사범으로 선임하고 특수 임무수행에 적합한 무술연구와 새로운 기법을 개발토록 하였다. 하던 중 무술 명칭을 [특공무술 = 特功武術 = Military Arts] 로 명명하고, 1979년 6월 고 박정희 대통령이 임석한 가운데 연무관(청와대 내부에 있는 체육관)에서 시범을 보이게 되었다. '고 김창수'님과도 사제관계를 맺었다. 박노원님은 1979년 8월에 특전사령부(당시 5공수여단장 장기오 장군) 연병장에서 시범을 보였고, 81년 1월 육군참모총장의 승인을 받아 5공수여단에 처음 보급함으로써 [특공무술]이 군의 정규교육과목으로 채택되었다 이 정예요원중에서 책임 교관 이원익님(세계특공무술연맹)과 여섯명의 교관을 선발해서 특공무술의 특수전 교육을 담당하게 하였다. 그 교관들이 또다른 교관들을 가르치고 해서 술기가 확산된다. 이 때 이 대대소속 대원 5명을 무작위 선출하여 북한남파간첩과 대련을 시켰는데 특공무술이 북한의 격술에 능가함을 보여줬다.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1986년 5월 사단법인 등록을 하고 이름을 사단법인 대한특공무술 (회장:김단화님, 총사:장수옥님)이라 칭했다 서승재(현 국제연합 총사)님은 유급부터 고단자까지 술기와 형을 나름대로 정립해 놓고 (유단기본형.특무,충무,연무.단봉형) 2차 술기정립이 진행되었다. (회장: 박노원님, 총사 :서승재님)을 창설하였다 기공 수련법을 초월한 내공법을 비롯해서 여러 술기를 접목하고 절충하여 더욱 독특한 특공무술 술기를 개발하였다. 을 열었고, 미국에서의 특공무술 전파에 나서게 되었다.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부곤님이다. 물론 다른 무술도 생명력이 있으나 그 유연성이 특공무술이 더 강하다는데 있다. 특공무술은 기존에 있던 술기나 개념이라도 필요 없다고 여겨지면 과감히 버리고 필요 있다 싶으면 과감히 채용하는데 있다. 즉 자기 변신이 빨라 발전 가능성이 높은게 가장 큰 특징으로, 이는 10년전, 20년전의 특공무술이 현재의 특공무술과도 차이가 있다는데서 드러난다. '무도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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