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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외침

태권도장에 태권도가 없다!

by 태권마루 2013. 8. 26.

언제인가 중·고등부 수업을 하는데 제자 하나가 "사범님! 사범님처럼 태권도 사범이 되려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물어 왔다. 그날 수업을 일찍 마치고 아이들을 앉혀 놓고 태권도 사범이라는 직업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전달해 주었던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비전(vision)이 불투명하다고 말했던 것 같다.

 

오늘 낮에 스마튼 폰을 만지작거리던 중 여러 태권도 관장의 카카오스토리를 보게 되었는데,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태권도에 내일은 어두울 것이라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A 관장의 카카오에는 도장에서 수련생의 생일 파티를 열어주는 모습이 올라와 있었다. 도장은 온통 풍선과 아기자기한 글씨로 뒤덮여 있고 수련생의 친구들과 학부모까지…. 그리고 관장과 사범은 사회와 게임 진행을 하며 놀아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도복은 왜 입었는지…….

 

B 관장은 도장 상호를 바꿨다면서 바뀐 간판을 보여주는데 00대 동문도장이라 되어 있었다. 까놓고 얘기해보자. 이름만 대면 아는 명문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쟁이 치열한 수도권 대학도 아니고 지방의 사립대인데, 그것이 간판으로 내걸 만큼 자랑거리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 옆에 경쟁하는 경희대 도장에서는 고마운 일 아닐까? SKY 나온 부모가 보면 웃을 일 아닌가 말이다. 웬만한 스펙으로는 좋은 기업에 취업하기 어려워 지방대 출신은 출신 학교를 숨기려 드는데 유독 태권도장들은 소위 말하는 삼류 대학이면서도 그 학교 동문임을 내세우고 있다. 태권도인들은 무식하니 이 정도도 고학력이라고 광고하는 것 아닌가 싶다.

 

C 관장은 뉴스포츠라는 명목하에 탁구 채로 배드민턴을 하는 이름도 희한한 운동을 하는 사진을 올렸다. 오전에는 유아체능단, 오후에는 이런 뉴스포츠 수업을 한단다. 그리고 운동이 끝나면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떡볶이 파티가 있다. 주말은 그야말로 신나는 날이 되고 도장은 놀기 좋은 친숙한 곳이 되겠지?

 

D 관장은 수련생과 스파비스로 물놀이 간 사진을 올렸다. 때 이른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보내고 있다며 학부모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토요일, 시범단이나 선수부를 지도하는 도장은커녕 태권도가 있는 태권도장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침 차량 운행도 황당하지만, 생일 파티나 떡볶이 파티도 황당하다. 뭐 마케팅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보수적이고 고리타분 한 나에게는 저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대학에 수천만 원내고 열심히 태권도 공부하고 나와서 하는 일이 아이들 태권도가 아닌 다른 운동 시키고 떡볶이 만들어 주는 일이라니….

 

나이 50이 되어서도 꼬깔모자 쓰고 꼬마들 생일 파티 해줄 수 있을 것 같은가? 결국, 지금 당신이 수련생 하나 더 받으려고 했던 짓(?) 때문에 새롭게 도장을 열게 될 후배들은 그것을 또 따라 할 것이고 당신이 나이가 들면 그들보다 놀아줄 경쟁력을 잃으니 밥그릇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태권도가 태권도를 잃어 갈수록 우리는 우리 밥그릇을 스스로 걷어차는 멍청한 꼴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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