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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일지

첫 번째 직원(사범)과의 짧은 만남

by 태권마루 2009. 12. 4.

도장을 인수한 지 한 달이 지나고 사범을 고용했다. 후배의 소개로 만난 Y 사범은 전국체전 선발전에서 입상까지 했던 선수 출신이었지만 사범 경력은 없었다. 뭐 가르치면서 하면 되겠지 싶었고 무엇보다 겨루기 관련 수업을 전담시키고 나는 품새 지도에만 전념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흔쾌히 같이 일하기로 했다. 면접 볼 때 오랫동안 같이 할 것을 강조하며 막 인수한 도장을 함께 키워 나가보자며 제안도 했다.

하지만 나의 기대를 오래가지 못했다. 태권체조 수업을 할 때는 뒤에서 같이 따라 하며 빨리 배워서 아이들에게 지도하려고 해야 하는데 어기적 하는 시늉만 내고 나중에 할 수 있겠냐고 물으니 다 외우지도 못했단다. 하사 출신인데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말투가 너무 딱딱하고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명령하는 투로 말하는 것도 귀에 거슬렸다. 단체를 대할 때는 말을 높여주라고 했지만 어색해서 그런지 노력하는 모습조차 찾기 힘들었다.

하루 이틀 지나도 태권도 지도자로서 노력하는 모습은커녕 의욕도 없어 보이는 Y 사범을 보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아는 분이 있는 타 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날 계획이라고 한다.

그 얘기를 들은 이후로 어찌 그리 미워 보이던지.... 말투 하나, 서 있는 자세 하나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겨루기 선수 출신이었지만, 사범이 겨루기 선수 출신으로 겨루기 실력이 출충해 봐야 일반적인 수련생들을 지도할 때는 뭐 아무런 도움도 되는 게 없었다.

2월까지 일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11월까지만 하고 그만두라고 했다. 9월~11월까지 3개월간 나는 형편없는 사범 때문에 마음고생 했고 Y 사범은 박봉에 자신의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일을 한다고 또 고생했을 것이다. 3개월 동안 나도 Y 사범도 둘 다 얻은 것 없이 잃기만 한 시간은 아니었을까..... 특히 나는 이제 막 도장을 인수한 중요한 시점에서 큰 손해를 본 것 같다.

처음으로 사람을 써봤다. 참 편하기는 했다. 하기 싫을 때는 모두 맡기고 쉬어도 됐었고 사복으로 갈아입고 밖에 나가 은행도 다녀올 수 있었다. 손님이 오면 마음놓고 상담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편했던 그 시간에 나의 아이들은 어떠했을까? 그들이 무엇 하나를 제대로 배워가기는 했을까?

뭐든지 시행착오는 있는 법! Y 사범을 통해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태권도 사범을 나의 업이라고 가지지 않은 이상 그 사람은 태권체조 하나 제대로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노트에 필기하며 지도법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업이라 여기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닌가 싶다.

처음 맞이하는 사범이라 나름대로 기대도 많았는데 실망스럽게 보내게 되어 안타깝다. 처음 일하는 날 도복 두 벌을 주었는데 떠나는 날 두고 가라는 말이 하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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