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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컬럼

경기무술은 "道"의 포기를 뜻하는가?

by 태권마루 2009. 10. 3.

Ⅰ. 앞글

무술세계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는 논쟁의 근원은 전통무술과 경기 무술간의 이념적 차이이다. 다음 장에서 유도, 태권도, 특히 가라테 사범 및 비평가들의 다양한 논쟁이 소개된다. 이 세가지의 무술은 경기 무술에 찬성하든지 아니면 이에 비판적인 태도를 갖고 있든지 간에 경기의 영역에서 계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무술들이다.

Ⅱ. 무도(武道)와 전통적 무술

무도는 "전투의 도(道)"(武는 전투를, 道는 길을 가르킨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핵심적으로 중세 일본의 사무라이 윤리법전인 무사도(武士道)와 사무라이 종교 젠(Zen=선, 禪)의 결합에 의한 것이다.

왜냐하면 무도는 환경과의 조화와 일치에 도달함으로써 가능한 완전한 자기실현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무보다는 도에 중요성을 두고 있다. 젠(Zen)과 무도의  정신은 숙련된 무술이란 "마치 죽음을 눈앞에 둔 것처럼 열정적이고, 전심전력을 다하고, 뒤로 물러서지 않고 사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전통무술의 많은 수가 경기적인 무술과의 유대관계를 시급히 끊고 있다. 이것은 가라테 道에서 더욱 그러하다. 몇몇 학파들은 가라테道라는 이름에서 가라테 무도로 이름을 바꾸고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무술의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원칙들에서 벗어난 여타의 가라테 道 유파들과 자신들을 구분 짓는다.

Ⅲ. 정신(spirituality)의 희생

경기에 말려들게 되면서 무술의 정신적 측면이 사라진다는 것이 스포츠무술에 대항하는 주요한 논쟁거리이다.

젠(Zen)의 대부인 데시마루 타이센(Deshimaru Taisen)은 스포츠란 오락으로서만 유용하고, 따라서 경기의 정신은 육체의 고갈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서구문화에서 무술은 "유행", "농촌스포츠"가 되었으며, 道를 추구하는 것은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논쟁에서 동양과 서양의 가치관의 차이는 두드러진다. "동양"의 불합리하고, 직관적이고, 집단지향적인 정신은 무도무술과 같은 실행과 훈련을 통해 그 자신의 가장 심오한 것을 추출해낸다.

그러므로, 무술의 본질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무술의 창조자에 의해 의도된 것이 아닌 타이틀과 지위가 널리 퍼져서는 안된다.

Ⅳ. 실행으로 목표 달성

무술의 진정한 목표는 적절한 훈련과 실행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 가라테 도의 큰스승(Master)인 에가미 시게루 (Egami Shigeru)는 적절한 훈련이란 인간의 정신을 계발하고 물질만능사회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무술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마음을 통해 진실되게 이루어져야 한다. 자랑하기 위해 무술을 행해서는 안되며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몸과 마음을 양성하고 스스로를 완성하고, 인류의 복지를 위해 기여하기 위해 무술을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덧붙여 우월감이 없는 환경에서 상호존중 속에 조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 큰스승 데시마루는 진정한 무술이란 "스포츠 아닌 무도의 정신을 취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Ⅴ. 인정과 자아존중

동양과 서양의 차이점은 무술에 대한 인정체제를 통해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인정을 받기 위해 경기 무술에 동참해 타이틀이나 지위, 승급을 통한 자신의 가치를 증진시키고 있다.

훔버토 헤이든(Humberto Heyden)사범은 많은 사범들이 "타이틀이나 우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무술을 끊임없이 스포츠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서구적 심성"에 비위를 맞추며 무술을 지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는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보다는 경기로 취득한 것에 대해 인정하는 심판장이 되어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경기, 트로피, 타이틀이 계속 만들어지게 된다. 사회 속에서 형성된 불안감은 경기와 성공을 향한 인간욕구를 촉진시키는 요소이다.

그리고 사회는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인정을 통해 이러한 불안감을 억누르고자 한다. 경쟁을 위한 훈련을 강조하는 도장의 성공은 물질적 이익이라는 서구의 혜택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Ⅵ. 서로 다른 목표

경기 무술과 전통무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道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자연법칙에 순응하고 자연법칙으로 인해 충만해지도록 자연의 조화 속에서 행동해야 한다.

무도는 "공격"을 "非공격"으로 전환하고, "실패"를 무술훈련에 있어 할 나위 없이 귀중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실패"란 그 사람이 타격을 입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승리나 패배의 개념에 대한 초월, 이기주의의 극복, 적과 "하나"가 되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삶에 있어 무도적 양식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저항하지 않고, 사익(私益)을 추구하지 않고, 조화와 공동체를 추구하는 정신"을 가지는 것이다.

반대로 경기에서는 단 하나의 목표가 있다. 즉 적수에게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가라테道의 큰스승 쿠카 타카시(Kyooka Takashi)는 1인자가 되기 위해 무술을 연습해서는 안되며, 다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무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강조할 점은 적수에 대해 승리하는 것보다 나 자신에 대해 승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Ⅶ. 경기규칙 대 생존규칙

경기에서 규칙은 명료하게 만들어지고, 위험한 공격은 금지된다. 그러나 실제 전쟁에서 규칙이란 없다. 공격은 모든 측면에서 날라 오고, 경기에서 금지되었던 모든 공격은 많은 경우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된다.

예를 들어 무술경기에서는 정면이 강조되고 측면보호는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무도에서 방어자세는 끊임없이 바뀌며, 무사는 어떤 것도 방치할 수 없이 모든 주변상황을 의식한다. 스포츠와 진짜 싸움 간의 차이점은 신체적 방어와 수반되는 전투자세에서 명백히 보여질 수 있다. 전투자세는 물론 기(氣)를 통해 보여지는 정신적인 상태인 것이다.
경기에 있어 주먹치기는 기술수준을 보여주는 것이고, 적수에게 부상을 입히는 것을 의미하며, 적을 죽이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경기에서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공격을 받고 즉시 (상대방에게) 타격을 주는 것으로 점수를 얻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기자는 상황을 분석하고 얻어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치가 허용되지 않는다.

Ⅷ. 무술을 팔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무술은 잘못 이해되고, 대중에게 팔릴 수 있도록 바뀌는 경우가 있다. 많은 사람들을 무술을 호전성의 표출도구이자 지배를 과시하는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도장들은 이러한 생각에 비위를 맞추고 있다. 무도는 폭력적이고 착취적인 무술영화에 의해 더욱 타락하고 있다. 무도정신은 포기되었고, 무술은 점차 스포츠가 되어간다.

"서구적인 조급함"은 즉자적인 성취, 인정, 무술영역에서의 보상에 대한 욕구를 증대시키고 있다. 훈련생들은 무술에 통달하는 것이 특정시기에 가능한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경기와 토너먼트는 적수를 물리쳐 최고가 되고자 하는 생각을 야기시키고 있다.
데시마루가 젠(Zen)사범이 되거나 무술의 경지에 오르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리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의 대답은 간단하다.

"당신이 죽을 때까지". 훈련생들은 무술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과연 어떠한 존재냐는 것의 문제"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무술이란 인생에 관해 배우는 그릇인 것이다. 에가미는 가라테道가 스포츠로 진화해, 훈련생들이 선생의 이름을 친구처럼 부르고, 전통이 지켜지지 않는 서구유럽의 도장들이 행해지는 것에 질색한다. 그는 가라테道를 배우는 것이란 일본무예를 배우는 것이고, 우리가 배우고 싶은 것은 배우고 나머지는 버릴 수 있는 단순한 선택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에가미가 보기에 스포츠 가라테는 2류 권투선수들이 하는 킥복싱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이러한 것이 가라테로 불리는 것을 가장 부끄러워한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무술원류에 대한 존경심이 없고, 창조자에 대한 존경심도 없기" 때문이다. 에가미는 가라테道와 스포츠 가라테와의 연결고리는 반드시 제거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 둘은 서로 상이한 이념과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Ⅸ. 경기무술에 대한 태권도의 방어

태권도의 경기무술에 대한 견해는 가라테의 그것과 상이하다. 왜냐하면 태권도는 40년 이상 경기무술로 형성되어 왔기 때문이다. 태권도의 이념은 마음과 정신간의 조화를 창조하고 신체를 훈련시키는 두 가지 목표를 위해 신체와 정신을 훈련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무엇보다 경기는 태권도의 다양성을 돋구고 있다. 세계태권도연맹은 1973년도에 창립되었는데, 그후 태권도는 빠르게 성장하여 전세계적인 스포츠가 되어가고 있다.
태권도의 이념은 무술의 정신적 측면과 보다 경기 스포츠무술 측면 양자 사이에 혼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스포츠맨쉽, 인정을 포함하는 경쟁의 모든 요소들은 무술로서의 태권도의 개념에 부합하고 있다. 태권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강조점은 "자신을 계발하고자 투쟁하는 것"이다.

태권도는 경기란 인간의 자연적 본능과 기술이 최고조로 표현되는 그릇이라고 믿는다. 경기의 이상(理想)은 스피드, 파워, 그리고 정확성으로 이러한 이상들은 훈련과 경기를 통해 현대스포츠로서 태권도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경기장은 기술을 응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규칙을 따르는 것을 배웠는지를 보는 심판장이다.

시합장은 "진정한 자아를 발견함으로써 신체와 마음, 정신의 조화와 완벽성을 이루는 곳"인 것이다. 이것은 자아와 함께 투쟁하고, 적에 대항하여 투쟁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태권도에서는 두 가지의 투쟁이 있는 것이다. 무도무술에서는 오직 한가지만 있을 뿐이다. 즉 훈련을 통한 자아실현이 그것이다.

아마도 태권도가 스포츠로서 쉽게 수용되는 이유는 태권도가 그 시초에서부터 스포츠로 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태권도의 전통, 이념, 목표, 실행은 경기와 함께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경기로 전화하는 것을 통해 무술이 타락한 것은 아니다.

태권도 동호인들은 정신적 조화와 경기장에서 그 용맹을 인정받는 목표 두 가지를 모두 존중하면서 훈련받는다.

Ⅹ. 유도의 관점

스포츠 유도는 많은 측면에서 스포츠 가라테와 유사한 비판을 받고 있다. 전통 무도로서의 유도의 설립자인 카노 지고로(Kano Jogoro) 박사는 "유도는 오직 보다 높은 자아계발을 위한 기술과 원칙을 의도해야만 한다. 그리고 유도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으로서의 콘테스트 유도의 어떠한 경향도 신중하게 규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경우에 경기의 승리는 지위의 빠른 상승을 보장하고, 콘테스트 점수는 향상의 지표가 된다.

사실상 유도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무도의 형태를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방침"(the way)으로부터 타락된 것이다. 연령과 여타의 요인들이 경기유도 훈련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평생훈련은 반드시 강조되어야 한다. 평생훈련의 이익은 신체적성과 정신적 적합성, 자아 존중, 반사행위의 증진과 같은 것으로 메달을 획득하는 것보다 훨씬 값어치가 있다. 그러나스포츠유도는 무술로서의 유도의 다원성과 존재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이기는 것"이라는 목표는 계속해서 살아남을 것이다.

맺는 말

앞에 말한 모든 논쟁과 관점을 고려해 볼 때 스포츠무술의 장래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에가미는 사회에서 스포츠무술의 공허함을 이해하게 될 것이며, 자아에 도전한 진정한 무술이 실현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道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수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스포츠무술이 되찾고자 애써야 하는 정신의 중요성을 터득해야할 것이다.

현대 사범들은 무술의 정신과 진정한 의도를 추구하여야 하는 책임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문하생들에게 이를 전수하여야 할 책임이 있다.

출처: 대한태권도협회 리사 리우(Lisa Liu) : 캘리포니아대학교 무도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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