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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일지

불량학생 보고 불량생각, 불량행동

by 태권마루 2008. 9. 1.

중·고·일반부 12명의 수련생을 데리고 1박 2일 캠프를 가는 길.. 찾아 놓은 돈이 없어 은행을 찾아 돌다가 현금지급기를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내리면서 길 건너편을 보니 딱 봐도 불량해 보이는 교복 입은 여중·고생들이 대략 15~20명가량이 몰려있었다. 몰려있길래 쳐다봤더니 이쪽으로 자꾸 눈치 보듯이 쳐다봤다.

동네에서 차량 운행을 하거나 밤늦게 퇴근할 때 청소년들이 불량스러워 보이거나 으슥한 골목에 모여있으면 어김없이 가서 사람들이 위화감 느끼지 않도록 밝은 곳으로 가라던지 그래서는 안된다든지 훈계하기 때문에 그런 눈빛에는 익숙하다. 일종의 경계하는 눈빛이다.

그저 몰려있는 것이겠거니 하고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급히 뛰어와서 차에 올라타니 차에서 기다리면서 그쪽을 쭉~ 지켜봐 왔던 우리 수련생들이 "사범님 저기 삥 뜯기고 있는데요? 그냥 가시는 겁니까?" 이러는 것이다. 내리면서도 이쪽으로 눈치 보는 것이 뭔가 있나 싶었지만, 상황을 모르기에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나는 그러면 그렇지 하고 뛰어내려서 그쪽으로 달려갔다. 바닷가 가는 길이라 알록달록한 반바지에 추리한 모습으로.... -_-;

가보니 4~5명이 일렬로 서서 다른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있는 모습인 듯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전체를 다그치며 뭐 하는 짓이냐고 호통을 치고, 일렬로 서 있던 아이들에게 "너희들 당하고 있는 거지? 빨리 가라" 도와주려고 했다. 그러자 그 아이들이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아니라며 다~ 친구들이라고 했다. 당연한 대답이었다. 뻔히 옆에 있는데 당하고 있다고 할 리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 아이들만 따로 한 쪽으로 불러서 차근차근하게 타일렀다.

"내가 도와줄 테니 기회가 왔을 때 탈출해라"

하지만 아이들은 어이없다는 듯이 자꾸 웃으며 아니란다. 더는 내가 할 수 있는 생각 나지 않았다. 사실 나는 어떤 상황인지 잘 알지도 못하고, 차에서 보고 내게 얘기했던 수련생들도 그런 듯 하다고만 알지 좀 떨어진 거리라 잘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겉으로 봐서는 우리 수련생들이 했던 얘기가 맞는 것도 같지만, 내가 더 몰아붙이면 내가 간 뒤에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그냥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저쪽에 몰려있던 여학생 중 하나가 "그런 게 맞으면 어쩔 건데요?"라며 반항적으로 나왔다. 순간 울컥해서 그 여학생 머리를 (기분나쁘게) 툭툭 밀면서 호통을 쳤다.

"일단 내가 오해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점은 미안하다. 하지만 저쪽에서 봤을 땐 그렇게 오해할 여지가 충분했고, 저 차에 타고 있는 우리 수련생들이 봤다고 해서 달려왔다. 입장 바꿔서 너희들이 만약 누군가에게 당하고 있을 때 지나가는 어른들이 도와주지 않고 그냥 갔으면 좋겠냐?"

그렇게 말하자 그 아이도 더는 할 말은 없었다. 모 중학교에 다닌단다. 학교나 경찰에 연락해서 상세히 조사해보도록 조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몇 마디 주의만 주고 돌아섰다.
(내가 볼 때) 당하고 있던 학생들을 보니 내가 거들어봐야 그 뒤에는 일이 더 커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으로 벗어나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이고, 어찌 보면 그 한순간이 그들의 삶에 중요한 거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것 또한 그들의 문화이기도 하다.

어쩌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나의 변명이다. 하지만 내가 해결할 방법을 알았더라면 나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우리 동네에 있는 많은 불량 학생들은 내가 도복을 입고 대하기에 나를 어려워하고 이제 나를 어느 정도 알기에 말이 통하지만 낯선 곳의 아이들은 더는 만날 수 없으니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고 여겼다.

차에 돌아오니 아이들이 복장만 아니었으면 정말 멋졌을 터라고 얘기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우리가 가면 더 당할 텐데 라며 걱정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순간 이동해서 몰래 숨어서 보다가 도와줄까 하다가 이내 마음을 접었다.

그러면서 우리 수련생들에게 말했다. "도와주려고 했는데 도움을 받기를 원하지 않나 보다. 도움을 받는 것이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위기를 모면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했는데 끝까지 아니라고 우기네.. 스스로의 견디도록 내버려 두자..." 지금 생각해보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했던 비겁한 처사가 아니었나 싶다.

목적지로 가는 길에 그 일이 자꾸만 떠오르면서 당시 행동에 대해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우리 도장 수련생들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요즘 청소년들에 대한 실망감도 함께 밀려왔다. 차에서 그 광경을 봤다면 왜 가만히 있었는가?
운동, 태권도를 배운 사람으로서 그냥 보고 자기네들끼리 구경거리 삼으며 보고만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점에서 말이다. 차에 타고 있던 수련생들은 대부분 3~4품으로 운동을 오래 한 친구들이고 실력도 뛰어난 친구들이다. 지금은 전교 1등 하는 고2 여학생이지만 중학교 때 '통' 잡고 나온 학생도 있었다. 나보다 덩치가 훨씬 큰 대학생도 있었다.

나도 비겁했지만, 그들도 비겁했다. 차에 타고 있던 12명의 태권도 수련생! 그들의 단을 합쳐보니 무려 21단이다. 태권도 21단이 불량 여중생 열댓 명의 그릇됨을 보고도 가만히 있었다는 것이 참 안타까울 따름이다. 무엇보다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이...

즐거운 캠프 가는 길이라 아무 말 않았지만, 월요일 수업 시간에는 좀 나무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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