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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외침

애를 잡아라~ 잡아!

by 태권마루 2008. 7. 11.

태권도대회를 앞두고 수련생들을 지도하느라 정신이 없다. 비교적 작은 대회라 많은 수련생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내가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참여로 선수를 선발했다. 태권도대회에 나가서 1회전에 탈락해도 된다는 마음가짐이 있는 수련생들은 손을 들라 하여 그중에서 다시 부모님의 동의를 얻은 수련생들은 거의 모두 참가 접수했다. 실력의 고하를 떠나 자신이 직접 선택한 것이니 혹여나 지더라도 그들이 받는 상처는 덜할 것이라 여긴다.

자신이 원해서 참가하는 것이기에 수련생들의 열기도 뜨겁다. 대부분은 대회에서 이기기 위해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되어 있다.
그런데 시험 기간과 겹치다 보니 학원에서 놔주지 않는 경우가 발생했다. 초등학교 5학년을 2시부터 10시까지 잡아놓고 공부를 시킨다는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시험 기간 2주를 앞두고 학원에서 밥도 먹여가며 하루 8시간씩 책상 앞에 붙들어 두는 것이다.

하필이면 9명이 한 조인 태권체조 부문에, 그것도 제일 동작이 안되는 수련생이 그런 상황이라 답답하기그지 없다. 학부모와 통화도 해봤지만, 학원에 전화해보겠다는 말만 하고 답변이 없다. 학원도, 부모도, 학생도.. 참 독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창 뛰어놀며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장해야 할 아이들이 책상에 가만히 앉아 암기하는 기계가 되어 버렸다. 이러다 다리가 퇴화하지나 않을까?

초등학생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보통 5~6시간인데 학원에서 8시간을 보내다니 할 말을 잃었다. 물론 아이들이 원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게 공부해서 과연 그 시절이 행복할까? 그토록 아이들을 혹사할 수 있는 학원의 배짱이 대단하다.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 것일까?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수 시간을 꼼짝없이 공부하라니, 그 부모들, 자신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J 군 아버님에게 지나친 것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 봤지만 역시나 가볍게 무시해주셨다. 학원에 전화해서 따져보고 싶지만, 괜히 나 때문에 J 군이 학원에서 미운털 박힐까 함부로 전화도 못 하겠다.
분명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해서 접수를 시켰는데 이제 대회는 코 앞이고 나머지 아이들은 열심히 연습해 왔는데 J 군 하나 때문에 일이 꼬여버렸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아이러니한 것은 함께 구성된 팀원들은 그렇게까지 공부하지 않고도 열심히 연습에 참여하면서도 다들 반에서 1, 2등 하는 우등생들이라는 것이다.

무엇이 J 군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일등을 위해 일등보다 더 값진 것을 놓치는 것은 아닐까?
동네 친구들과 수 시간을 걸어 바닷가 가서 바위 들춰내고 게를 잡던 나의 어린 시절이 그립다. 반에서 1등은 아니었지만, 매일 흙 뒤집어쓰고 엄마에게 야단맞았지만, 우리는 건강했고 나는 지금 나의 꿈을 이뤄 행복하다.

남들이 다 하기 때문에 내 아이가 뒤처질까 걱정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세상 그 누가 모를까? 하지만 남들처럼 하기에 그 아이는 남들같이 된다는 걱정은 하지 않는 것일까? 남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않는 부모들의 용기도 필요하다고 여긴다.
우리네 아이들은 우리가 아는 에너지 넘치고 쾌활한 그런 아이들이 아니다. 벌써 스트레스와 피로로 얼굴에 그늘이 가득하고 생기가 없는 고3 수험생의 모습이다.
무거운 가방을 매고 축 처진 어깨에 느릿느릿 걸어가는 요즘 아이들에게 마음껏 소리치고 땀 흘리며 뛰어놀 수 있는 그 시절이 다시 올까? 아무래도 대한민국에서는 한 세기는 넘어야 가능한 얘기일 것 같다.

아버님, 어머님, 선생님....!!! 아주 그냥 애를 잡아요~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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