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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일지

태권도장에서 웬 무기술?

by 태권마루 2008. 6. 15.

100명이 넘던 수련생이 서서히 줄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80명 선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도장 주변 재개발 때문에 이사 간 수련생도 많고, 가계가 많이 어려워졌다는 악재가 있었다. 하지만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답답해하며 소리치고 늘 거기서 거기인 프로그램으로 흥미와 동기를 유발하지 못한 나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여긴다.

칭찬의 힘을 그렇게도 잘 알면서도 혼자서 많은 일을 하다 보니 그 스트레스가 아이들에게 발산되었던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위기감을 느끼고 이제라도 마음을 가다듬고 열심히 해보니 다시금 수련생이 불어나고 있다.

수업 프로그램에 큰 변화는 없지만, 주말에 좀 덜 쉬더라도 수련생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고 있다. 함께 자전거도 타고, 인라인 타러도 가고 등산도 가고.. 많은 것을 구상 중이다.
다른 도장들은 수련생 관리 차원에서 이미 여가를 채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나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잘못해서 답답하고 말 안 들어 화가 나도 이제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다시금 가르치려고 하는 여유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기부여를 위해 실력이 좀 뒤처지는 아이들도 대회에 참가시키고 유품자들에게는 각 품별로 무기술을 지도하려고 준비 중이다.

1품은 단봉, 2품은 쌍절곤, 3품은 장봉을 생각하고 있다.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고 잘하지도 못하지만, 아이들 가르치기에는 부족하지 않으며, 봉술은 잘 아는 도장의 사범으로부터 배우고 있는 중이다.

봉술을 배우기 위해 봉 두 자루를 사서 사무실에 세워놓는데 모 관장님이 보시고는 탐탁지 않게 여기신다. 그리고 다른 관장님들과 얘기하면서 태권도에서 쌍절곤이나 봉술을 왜 가르치냐고 답답해하신다. 사실 나 역시 답답하다. 지금까지도 매우 혼란스럽다.

나는 늘~ 태권체조가 생겨난 것을 원망스럽게 여긴다. 태권체조를 지도할 때마다 내가 춤 선생인지 사범인지 모르겠다며 속으로 투정 부린다. 모 도장이 태권도 시범에서 멋들어지게 쌍절곤을 돌리며 화려하게 시연하는 것을 보고 단지 시범(도장 홍보)을 위해 저런 것을 가르쳤다며 속으로 비난한 적이 있다.
태권체조, 기계체조, 음악줄넘기.. 각종 학교 체육과 온갖 색으로 치장한 띠와 도복들.. '도대체 지금의 태권도는 무엇인가...? 지금의 도장들을 과연 태권도장이라 할 수 있는가...?' 수많은 질문이 나를 흔들어 놓고 있다.

뚜렷한 가치관조차 정립하지 못한 채 그 많은 작은 인간들을 지도해도 되는지 자책한다.

태권도는 일종의 폭력(싸움의 기술)을 배우는 무술의 하나이다. 발 '태' 주먹 '권', 명칭이 말해주듯 맨몸 격투기인 것이다. 그러니 태권도장에서는 손과 발로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을 지도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다.

하지만 무기가 필요할 때도 있으며, 무기를 다룰 줄 안다면 보다 효율적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무기를 쓰는 법을 알면 무기를 사용하는 상대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다양한 기술을 배움으로써 동기가 부여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치열한 무술학원(?)들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다양한 것을 가르쳐야 하는 현실적인 부분도 있다.
결정적으로 내가 수련생들에게 이러한 무기술을 지도하고자 하는 이유는 동기부여와 함께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우고, 그렇게 알게 된 것을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내 제자들인 만큼, 또 수련생들도 원하는 마당에 지도하면 그만이겠지만 태권도의 정체성을 훼손시키는 것은 아닌가 해서 하는 고민이다. 태권도에 대해 무엇 하나 똑 부러지게 아는 것 없지만 최소한 태권도 사범으로서 태권도의 본질을 훼손해서는 안 될 테니 말이다.

물론 나는 이미 계획한 대로 준비를 하고, 나름의 자기 정당화를 통하여 무기술을 지도할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이 옳은지에 대한 의문은 지금까지처럼 쉬이 풀리지 않을 것 같다. 명확한 판단조차 세우지 못했으면서 무턱대고 가르치려고 고집부리는 나는 욕심쟁이 우후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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