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범일지

1년간 사범 생활을 마치며....

by 태권마루 2006. 10. 21.

이 도장에 사범으로 들어온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지난 1년간 정말 힘들고 괴로운 날들이 많았지만, 오늘날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지난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성장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소수 아이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내가 이제는 말 몇 마디로 40명의 아이도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도록 다룰 수 있는 지경이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아이들이 나에게 많이 길든 탓이기도 하지만,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을 최근 들어 많이 느끼고 있다.

고학년이나 중·고등부 아이들까지 휘어잡는 데 1년이 걸렸다. 이제야 능수능란하게 뭔가 좀 하게끔 되었는데 나는 떠나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엄연히 따지자면 스카우트되어 가는 것이다. 매일같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나에게는 보수, 거리, 여건 등 여러 가지로 조건이 좋은 곳으로 가게 되니 기대가 크지만 그래도 앞에 있던 사범이 워낙에 잘한 덕분에 부담도 상당하다.

의리상 내가 가지 않겠다고 해도 되지만 나의 미래가 걸려있는 만큼 보다 좋은 곳으로 향해야 하는 것이 나로서는 현명한 선택이라고 여겼다. 어쩌면 나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해 줄 한 번의 기회일지 모르니 말이다.

떠나는 마당에 속 시원한 부분도 있지만 정든 아이들과 이별해야 한다는 것이 아쉽다. 원래가 아이들을 아주 싫어했던 내가 처음으로 아이들을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었는데 말이다. "사부님~" 하며 나에게 안기며 장난을 걸어오던 녀석들을 생각하면 내가 잔인하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흰 띠 때부터 가르친 아이들의 승품·단 심사를 보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또 하나의 아쉬움도 있다. 조금만 더 있으면 그 녀석들에게 품 띠를 둘러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참~ 고된 지난 1년이었다. 매일 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출퇴근해야 하는 것도 힘들었고, 대학에서 다 큰 녀석들만 가르치다 말 안 통하는 아이들을 대하는 것도 힘들었고, 나를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지도자로 곁에 두고자 질타를 아끼지 않았던 관장님의 한 마디 한 마디와 너무나 부지런하고 성실했던 관장님 탓에 쉬는 날도 별로 없이 일했던 것도 힘들었다. 자기가 하는 일이 힘들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마는 나는 그래서 힘들다는 표현보다는 고된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내가 도장을 옮기더라도 마찬가지로 많은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에 찌들어 생활할 것이다.

이제 일주일 남았다. 관장님의 간섭없이 프로그램부터 모든 수업을 도맡아 하던 마지막 부(중·고등부) 수업에 몇 가지 목표를 두고 있었는데 남은 시간 동안 그 목표치를 채우고 나오고 싶다. 공중회전 낙법과 쌍절곤을 내가 생각했던 만큼은 꼭 가르쳐야겠다. 하루도 빠짐없이 유연성, 발차기 수업이 있었는데 남은 일주일은 모든 그런 계획은 취소하고, 쌍절곤과 실전훈련, 낙법에 쏟아부을 것이다. 다른 수련생(초등학생)들로부터 "우와~"하는 함성을 받을 수 있는 녀석들로 만들어 놓고 싶었다.

내가 아무 경력 없이 처음, 이 도장에 일하게 되었을 때, 앞에 사범이 내가 3개월도 못 버틸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곳은 타 도장보다 힘든 점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1년을 잘 버텨왔고,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었다. 그 얘기에 견주어 보면 나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이 아니겠는가….

새로 옮길 도장은 지금의 이곳보다 더욱더 많은 것을 가르치고 미처 내가 가르칠 수 없는 부분까지 수업하고 있다. 그리고 오래 지도했던 사범이 나가는 것이기에 아이들은 나를 만나면 상당한 거부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느끼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3개월 이상 버티지 못할 거라는 예상이 내 앞에서 보기 좋게 깨진 만큼 나는 새로운 곳에서도 사람들의 생각 이상을 해낼 수 있을 거다.

아쉬움, 기대, 부담, 희망…. 많은 감정이 교차하고 있다. 묵묵히 온 힘을 다하는 길만이 나에게 길이겠지….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관장님이 도복과 띠를 하나 해주셨다. 나에게는 나름대로 의미가 큰 도복과 띠지만 이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길을 가는 만큼 나 스스로 새로운 도복으로 갈아입고 새로운 띠를 준비해 둘러매려 한다. 나의 내일에 몇 개의 검은 띠가 생길지 궁금하다.

2006.10.21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