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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일지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

by 태권마루 2008. 2. 28.

어제 아이들을 지도하면 문득 내가 아이들에게 가볍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 사범 생활을 시작했을 때, A 도장 관장님께서 이전 사범을 왜 내보냈는지를 설명해 주셨다.

사범은 아이들과 함께 땀 흘리며 운동하고, 아이들이 뛰어놀 때도 함께 뒹굴며 친근하게 지내야 한다.
그렇지만 무서워야 할 때는 또 아이들이 두려워할만큼 무서워질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전에 있던 P 사범은 서 있는데 아이들이 뒤에 와서 똥침을 가할 만큼 아이들에게 낮게 보여 퇴출시켰다.


사범 생활을 시작하며 들었던 말이었기에 귀에 새겨들었고, 지금까지도 나는 아이들이 나에게 함부로 행동하지 않도록 일종의 권위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가볍지 않은 존재로 각인되고 싶은 것이다. 문제는 가벼움과 무거움의 사이를 조율하기가 고작 2년 차 사범에게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성인이라면 카리스마로 일관하며 지도에만 열중할 수 있겠지만, 어린아이들이 많다 보니 딱딱한 모습만으로는 아이들을 집중시키지도 학부모에게 인정받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행사장에 가면 어떻게 지도하고 통솔하는지 보고 배우려고 항상 다른 지도자들의 모습을 유심히 본다. 승품·단 심사장이나 태권도 대회장에 가보면 어린 사범들이 많이 보인다. 대부분 고등학생이거나 대학생, 또는 이제 갓 학교를 졸업한 보조 사범일 것이다. 그들을 관찰하고 있으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가벼워 보인다.

아이들이 막~ 안기고, 장난을 걸고, 심지어 삐쳐서 말을 안 듣고 무시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학부모로서는 그들이 고마운 존재일지 모르나, 그들이 훗날 혼자서 아이들을 지도해나가야 하는 정 사범의 위치에 섰을 때는 과연 어떨까..?

소수의 유급자는 지도할 수 있을지언정 다수의 산만한 아이들을 집중시켜 태권도를 효과적으로 지도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것은 곧 태권도 교육의 질적 저하와 연결되는 것 아니겠는가! 뭐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아무튼 나는 그들처럼 가벼워 보이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내 어릴 적 관장님처럼 똑바로 눈을 바라보기도 어려울 만큼 압도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사실 내가 어느 정도로 아이들에게 비치길 원하는지 나 자신조차도 잘 모르겠다. 그것을 잘 알고 있다면 선을 잘 그어, 이미 아이들에게 교육했겠지? 아마 도복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럴 때일수록 타인의 경험을 통해 배우는 지혜가 필요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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