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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컬럼

태권도 사범의 바람직한 지도자 상

by 태권마루 2008. 2. 9.

태권도 사범의 바람직한 지도자 상.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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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몸말
   1. 태권도 사범이 숙지해야 할 전통 태권도의 이해
      (1) 태권도에 있어서 전통에 이해 - 태권도 지도자으로서의 도덕성
      (2) 지도자의 정신의 세계
      (3)  수련교육 정립 단계별 과정(표)
   2. 지도자들의 태권도 도덕적 교육 책임
      (1) 도덕성을 필요로 하는 이유
      (2) 도덕 교육적 책임

Ⅲ. 맺음말

참고 문헌

 

Ⅰ. 머리말

시대 흐름에 따라서 변해가는 지도자들의 교육 시스템을 보면서 일선에서 태권도 지도자로 생활하고 있는 내가 어릴 때 수련하던 태권도 도장의 모습이 조금씩 상실되어가고 우리가 어릴 때에 운동했던 태권도의 무도적 인식이 없어지는 관점에서 현실에 태권도 교육이 과연 올바른 태권도 교육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지도자들이 태권도장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너무 현실적인 문제를 빌미로 본래 태권도 교육 목표에 벗어나 한 지역사회의 지도자로서 아이들을 이끌어 가지는 못할 망정 되려 아이들 흥미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위기감을 갖게 되었다.

그 위기감은 ‘과연 태권도 교육을 흥미있게 할 수 없는가?’란 생각으로부터 나온 것은 아닌가.  그렇다고 수련생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들이라는 현실을 무시하고 종래의 단순한 수련 방법만을 고집할 것인가? 우리는 두 가지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충분히 태권도를 중심으로 수련을 진행해도 흥미있게 아이들이 배울 수 있다라는 것과 이것이 전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선 지도자들의 책임에 있다는 것이다.

아래와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사용함으로써 태권도를 흥미있게 교육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말해서, 지도자의 인식도가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서 이것이 가능할 수 있고 반대로 불가능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후의 논의는 바른 태권도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지도자가 태권도에 대해서 어떠한 철학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어떻게 일선에서 태권도 교육 프로그램을 꾸려가고 있는가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먼저  전통 태권도에 대한 이해로써 태권도에서의 전통의 실체를 도덕적 수련이라는 과정에서 살펴보고 태권도에서의 정신적 의미와 이로부터 다양하고 체계적인 태권도 교육 프로그램이 가능하다는 것과 더 나아가 이로써 전통 태권도 교육을 발전적으로 계승할 수 있다는 보이기로 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또한 이러한 태권도 교육이 전적으로 태권도 지도자의 도덕성과 그 교육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음을 아울러 살펴보고 결론을 맺고자 한다.

Ⅱ. 몸말

1. 태권도 사범이 숙지해야 할 전통 태권도의 이해

(1) 태권도에 있어서 전통의 이해 - 태권도 지도자로서의 도덕성

태권도가 주는 신체적 이득은 이른바 달리기나 수영이 주는 신체적 효과와는 다르다. 태권도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해서 일련의 독특한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다. 분명히 태권도는 단순한 운동 또는 경쟁적 스포츠와는 달리 그 출발에 있어서 독특한 윤리적 본질을 가진 효과적인 호신술이다.

언뜻 보기에 무서운 폭력을 행사 할 수 있는 기술을 목적으로 하는 무예가 수련을 통하여 도덕적으로 고결한 성품과 평온한 자세를 갖도록 한다는 것이 이상하게도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태권도에서 매우 중요하다. 인간은 누구나 공격 성향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다고 한다.

태권도는 이러한 공격성향을 정화하여 조절하도록 하며 더 나아가서 자제토록 하는 것이다. 태권도는 공격을 허용하되 정당한 방향에서 신사적인 방법으로 공격토록 한다. 태권도는 세계적인 현대 무기이며 총알에 견줄 수 있을 만큼 위력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는 폭력을 초창기에 제압하므로 보다 큰 재앙을 예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태권도는 당사자 누구에게나 막대한 피해를 주는 격렬한 싸움을 막는 방법과 그 방법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는 것이다  현대 태권도는 수련 생들에게 매우 다양하고 유용한 기술을 가르쳐 주어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않고도 상대을 무력화시킬 수 있게 해 준다.

20세기에 고안된 자유대련(겨루기)은 자기 절제를 요구하는 긴장된 대결상황에 익숙토록 해주는 역할을 한다.  자유대련 시 수련 생은 한 사람의 상대자와 겨루게 되며 상대의 공격을 예상하여 막고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공격 방법을 배운다. 태권도는 그것이 무예수련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태권도를 배우는 초보자에게 사범은 맨 먼저 다음과 같은 말을 할 것이다. “만약 네가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가능하면 피하도록 노력하여라. 그 자리를 빠져나가는 것이 가장 상책이다 ”
이처럼 태권도는 자신을 내보이기 위한 수단이 아니며 정숙한 자세를 요구하는 개인 수련이다.
지도자 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은 도덕적으로 고결한 성품을 갖추는 일이다.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폭력을 거부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능력에 대하여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이러한 회피가 오히려 정정당당한 것이다.

태권도 수련이 조그만 세계를 만들어 낸다면 그것은 한 사람의 도덕적인 성품이 시험되며 발전되고 강화되는 세계일 것이다 그것은 사막에서 생명을 지키는 과정과도 같을지 모른다 적십자의 안전과정이 우리가 물 속에 빠졌을 때 생명을 구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면 태권도는 육지에서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침착하게 생명을 지키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태권도가 강조하는 기술은 적의 공격을 막는 방법으로서 회피와 무력화의 방법이다.

태권도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에서 오는 공격을 반복되는 개인 훈련을 통해 방어하게 해 주며 급박한 상황에서 자기통제 자기확신 침착한 자세를 유지 할수 있게 해준다. 태권도는 또한 존경심을 강조한다. 사범은 수련생들이 무례하고 건방지며 복종하지 않는 태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수련 생들은 사범과 동료 수련생 그리고 도장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

태권도는 끈질긴 인내와 안전 그리고 야심을 갖지 않고는 숙달될 수 없다. 검은 띠를 매기까지는 몇 년이 걸리며 고단 자가 되려면 몇 십 년 걸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도덕적으로 고결한 사람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윤리학의 역사는 도덕적 덕이 교육될 수 있는가 아닌가 라는 질문과 관계되면서 형성되어 왔다. 우리는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처럼 이런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든가 또는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그럴 듯하게 정돈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단지 어떤 사람이 실제적이고 도덕적인 문제 상황에 직면하여 반응하는 방법은 부분적으로 그 사람의 능력과 사회 속에서의 교육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주장 할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태권도는 문명인의 도덕적 관심을 환기 시켜준다.

태권도는 어떤 유토피아적 사회에 접근하는 것도 격정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것도 아니다 태권도는 실제 잠재적 격정 상황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과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준다 효과적인 호신술이라는 면을 떠나 태권도는 현대 문화에서 중요한 추상적 도덕 가치 즉 긴박한 상황 아래서 자기 신뢰 용기 자기통제 능력을 길러 준다는 사실을 우리는 특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2) 지도자의 정신의 세계

태권도가 가지는 본래의 수련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태권도 수련을 정신 수양과 수련 이치(원리)에 입각한 무도 태권도로 재정립을 하고 이를 수련의 근본으로 삼는 것밖에는 없다고 보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태권도 수련의 목적에 대한 방향을 무도 태권도 수련의 개념으로 설정하고 수련을 해야 태권도 수련에서 오는 수련의 의미(맛)를 알 수 있을 것이며 수련에서 얻고자 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통상적으로 정신에는 보이는 정신과 보이지 않는 정신이 있다. 보이지 않는 정신은 사상 또는 추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정신이라고 보며 보이는 정신은 끈기와 투지 지구력 참을성 용감성 등 강해지고자 하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현재 태권도 수련에서 추구하는 정신세계는 우리 고유의 정신세계인 안 보이는 정신 즉 “도”적인 개념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전통적인 우리의 개념과는 어긋나 있다고 본다.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과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무도 정신과는 의미상 틀리는 것으로서 태권도 정신이 잘못 이해되면 수련이 잘못 수련되고 수련이 잘못 수련되면 오히려 육체나 정신에 해가되므로 태권도를 통한 태권도 수련의 목적에 부합하는 태권도 정신 개념부터 재정립해야 한다고 본다.

(3)  태권도교육 정립 단계별 과정

어떤 사람들은 구태의연한 태권도 교육 방법을 고집하기도 하고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기본 동작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흥미위주의 태권도 교육 방법에 치중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흥미 있는 태권도 교육이 가능하다는 인식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생각을 이렇게 할 수도 있으며 저렇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전환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 자신의 개발이 필요하다 보다 많은 것을 배우고 창조해서 보다 나은 지도 방침을 연구개발 하여 수련생 지도에 한치의 오점을 남기지 않도록 사범님들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래 도표를 보면서 다시 한번 교육의 전반적인 것을 살펴보고 교육의 중점을 어디에 맞춰 교육할 것인가? 상기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에 나름대로 수련교육의 단계별 과정을 정립해보았다.

 

수련교육 정립 단계별 과정
 

태권도 교육의 정신적 의미 발견

태권도 교육의 필요성

인식의 전환

다양하고 체계적인 태권도 교육 프로그램 개발

- 수련형태 별 수련방법 연구

 

2. 지도자들의 태권도 도덕적 교육 책임

(1) 도덕성을 필요로 하는 이유

태권도란 무엇일까?

태권도는 발로 찬다는 의미를 가진 태(跆)와 주먹으로 막고 지른다는 뜻을 가진 권(拳), 그리고 길과 방법을 뜻하는 도(道)로 이루어진 단어이다. 즉 태권도란 단어의 순수한 의미에서 발로 차고, 주먹으로 막고 지르는 일정한 기술의 체계로 이해해 볼 수 있겠다.

실제로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태권도 역시 맨손과 맨발로 수행하는 전신운동으로서 인체의 특정부위와 관절을 단련하여 자신을 방어하고, 타인을 공격하는 기술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볼 때 태권도수련은 신체를 단련하여 강하게 만드는 과정이자 동시에 신체의 폭력가능성을 높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도덕성은 대학교수나 교사, 성직자 등과 같이 폭력 사용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인격적 자질로 보인다. 조직폭력배나 거리의 깡패와 같이 폭력 사용을 업으로 삼고 있는 자들에게 도덕성을 요구하는 사람은 없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신체의 폭력가능성을 높여주는 태권도와 폭력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도덕성은 겉보기에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태권도 도장이나 훈련장 또는 경기장 등을 방문해 보면 태권도 수련이나 경기를 전후해서 지도자나 상대 선수에 대해 정중한 예의를 표하는 광경이나, 도덕과 질서를 강조하는 정신교육 장면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는 경향은 광복 이후 태권도의 진흥에 힘썼던 도장들의 이름에서도 잘 드러난다. 지도관(智道館), 무덕관(武德館), 강덕원(講德院), 송무관(松武館) 등의 초창기 도장의 명칭에는 지혜(智), 도(道), 덕(德) 등과 같은 윤리적 덕목에다가 민족의 기개를 상징하는 소나무(松)까지 곁들어 있다.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태권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도덕성을 그렇게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태권도는 여러 가지 인간을 이롭게 하는 측면을 다양하게 내포하고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폭력으로 남용될 소지가 많은 행위양식이기 때문이다.
태권도는 각 개인이 자신의 몸을 단련하고 수련하는 과정에서 건강과 자신감, 극기와 절제 등과 같은 바람직한 가치를 습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기능을 갖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과정에서 몸을 폭력수단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 기능을 갖는다.

이 두 가지 기능이 적절하게 조화되는 경우 태권도는 그 자체의 타당성을 갖게 되지만 태권도의 부정적 기능이 긍정적 기능보다 우선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미국이나 유럽사회에서 개인간의 갈등상황에 태권도기술을 사용하는 경우 법적인 측면에서 칼이나 총과 같은 무기의 사용과 동일시하여 매우 엄하게 처벌하고 있는데, 이 점은 바로 태권도의 역기능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역기능에 대한 보완적 수단으로서 태권도수련에 앞서 도덕성을 강조해야만 한다.

이 내용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자동차운전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우리가 자동차를 운전하기 위해서는 운전기술을 배우기에 앞서 먼저 교통법규준수의 내면화과정, 즉 교통도덕교육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자동차운전은 분명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매우 유용한 면을 많이 갖고 있다.
그러나 교통법규를 내면화하지 못한 사람이 운전을 할 경우에 그것은 매우 위험하고,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생겨난다.

자동차 운전은 한마디로 사람을 살생하는 폭력이 될 수 있다. 1톤에 가까운 쇠 덩어리를 시속 100km로 달렸을 경우에 이것과 충돌해서 살아남을 자는 없다. 실제로 우리는 운전미숙이나 취중운전으로 여러 사람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린 경우를 신문지상에서 드물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이렇듯 운전은 분명 매우 위험한 폭력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은 기능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운전면허를 허가해 주는 기관에서는 그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운전기술을 배우기에 앞서 교통법규의 내면화과정, 즉 교통도덕의 습득을 요구하며, 이러한 조건을 갖춘 사람에게만 운전을 허락한다.

운전은 삶에 유익한 측면을 많이 제공해 주지만 폭력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높은 기능이기 때문에 오직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직 도덕적으로 미성숙한 미성년자나 정신이상자 또는 상습적 음주운전자에게는 운전자격이 부여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예를 군대의 강한 규율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평화시에도 군인들에게는 강한 규율과 절도, 절제력이 요청된다. 그 이유는 이들이 인명을 손쉽게 살상할 수 있는 무기를 소지하고 있으며 그것을 임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군인들이 자신이 소지한 무기를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면 사회적으로 커다란 혼란이 야기될 것이다. 따라서 군인들은 무기를 소지하기 이전에 각종 훈련과정과 정신교육을 통하여 무기를 함부로 남용하지 않도록 철저한 도덕교육을 받는다.

태권도에서 도덕성이 강조되는 이유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어느 정도 신체적 조건만 갖춘 사람이라면 "바른 방법"으로 오랫동안 태권도를 수련했을 경우에 그의 몸은 상대적으로 그 이전보다 강해지고, 빨라진다. 말하자면 그가 발휘할 수 있는 폭력가능성은 크게 증가한다.
이와 같은 강함 또는 폭력가능성의 증가는 수련자에게 건강이라든가 자신감과 같은 유익함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없는 자가 소유했을 때 그것은 사회적으로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교실에서 동급생들을 협박하거나 구타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고, 거리에서 금품을 갈취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으며, 사소한 말다툼 중에 자신의 의사를 관찰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남용될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폭력의 남용은 원칙적으로 법적 제재를 통해 방지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는 말도 있듯이 법이 통용되지 않거나 효력을 미치지 못한 영역이 법치국가 내에서도 분명히 존재한다. 학교운동장의 한 모퉁이나 으슥한 골목, 또는 인적이 드문 공원 등지에서는 법보다 주먹이 가깝기 마련이다.

따라서 강함과 폭력에 다름 아닌 태권도 기술을 습득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 기술을 익히기 이전에 먼저 자신을 억제하고, 인간을 존중하며, 자신이 습득한 기술을 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내면적 태도, 즉 도덕성을 먼저 길러야만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태권도는 도덕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동양의 전통사회에서도 각종 무술을 전수해 주는 과정과 관련하여 "비인비전(非人非傳)"이란 말이 강조되고 있는데, 이 말은 "인간이 아닌 자에게는 무술의 기술을 전수해 주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진 한자성어이다.
이 성어 역시 무술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무술기술을 습득하기 이전에 먼저 (도덕적으로 성숙한)인간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도덕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무도수련, 그것은 폭력의 습득과정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제시한 나의 주장에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당신의 설명을 잘 음미해 보면 태권도수련과정과 도덕성습득과정은 서로 별개의 과정이라는 주장이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잘못되었다.
태권도란 그 자체에 이미 도덕성을 길러주는 도덕 교육적 요인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태권도를 수련하다 보면 도덕성 습득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따라서 태권도수련과는 별도로 진행되는 도덕교육은 불필요하다." 이와 같은 반론은 한편으로 옳을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틀린 반론이다.

선생(사범)을 잘 만났을 때 태권도수련을 통해 도덕성이 길러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옳지만, 태권도수련 그 자체로는 도덕성을 기를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에서 틀린다. 혹자는 때리고, 지르고, 차고, 막는 태권도수련 자체가 제공하는 혹독한 훈련을 통해 얻어지는 인내심이나 극기심, 단결심, 복종심 등이 도덕성을 길러주는 근거로 작용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요인들은 도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나 도덕성 자체의 구성적 요인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조직폭력배집단 구성원이나 깡패에게도 이러한 능력은 똑같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로 차고, 손으로 막고 지르는 태권도 자체의 수련과정과는 별도로 사범의 의도적인 도덕교육이 필요하다.

(2) 도덕 교육적 책임

사범이 도덕적으로 모범을 보이고,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음으로써 아이들의 도덕성이 발달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태권도가 단순한 폭력으로 타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렇게 아이들의 도덕성을 키워 주는 일은 우리가 태권도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상황을 총체적으로 고려할 때 반드시 우리 태권도인들에게 급박하게 요구되는 요청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현재한국의 교육상황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볼 때 태권도에 막중한 도덕 교육적 책임이 부과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사회상황은 태권도 사범에게 도덕적 책임을 부과하고 있는가?
우리는 종종 "한국에는 교육이 실종됐다"는 말을 대중매체를 통해 듣는다. 왜 이런 말이 나돌까? 학교라는 교육기관에서 현재 이 시각에도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마당에 교육이 실종되었다니 도대체 무슨 말일까? 교육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양식으로 나뉘어진다. 정보(이론적 정보나 기술적 정보)를 전달하는 교육과 인간을 만드는 교육(바르게 사는 법의 교육, 즉 도덕교육)이 그 두 가지 양식이다.

참된 의미에서의 교육은 이 두 가지양식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교육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학교교육은 오직 정보의 전달 교육에만 치중하고 있다.
그 결과 도덕교육 이 부재한 실정이다. 지금과 같은 입시 중심 교육체제하에서 도덕교육, 인간교육에 대한 기대는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나는 태권도도장에 기대를 걸어 본다. 왜 하필 태권도장인가?
현재 우리 나라에는 수천 개의 사설 도장이 존재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관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이것이 그 이유이다.
우리 태권도장은 수많은 우리의 아이들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교육에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을 도장에서 배울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즉 태권도장은 우리 아이들의 도덕교육을 책임져야만 한다.
이것은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우리 태권도인들의 자각적 책임일 뿐만 아니라 아이를 도장에 보내는 학부모들의 요청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요청은 한국사회는 물론이고 태권도가 보급되어있는 서구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도장에서 도덕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범에게 그에 걸 맞는 자질이 요구된다. 교육자적 자질, 구체적으로 말해 도덕교육을 수행할 수 있는 교육자적 자질이 요구된다. 그러나 현재 우리 나라 사범들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이 점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국기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범지도자교육을 보면 대충 답이 나온다.

지도자 교육의 대부분은 실기위주로 이루어져 있다. 겨루기론, 품새론, 시범론 등등. 최소한 10년 이상 태권도를 수련해야 4단을 얻을 수 있으며, 4단을 얻어야 지도자 교육을 받을 자격이 주어진다. 그런데 10년 이상의 태권도수련으로 부족해서지도자교육에서 또다시 실기를 배우다니... 물론 실기교육이 필요한 점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도장마다 기본기의 동작이 조금씩 다르고, 따라서 품새도 다르게 실행되고 있기 때문에 교과서적으로 정립된 통일된 동작을 가르치는 사범에게 교육자로서의 책임감과 의무감을 심어 주어야 하고, 바른 교육이 무엇이며,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를, 왜 인간을 존중해야 되고, 아이들은 바르게 가르치는 방법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만 한다.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해 주도록 노력"하라는 간단한 말로 요약할 수 있다.

Ⅲ. 맺음말

운동을 어떻게 교육하느냐에 따라서 수련 생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도 있고 또 그 반대일 수 도 있다. 옛말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라는 옛말에서 보듯이 스승이라며는 존경 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추고 헌신적이며 도덕적으로 교육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훌륭한 지도력과 인간애가 있는 사람을 말한다. 또한 그러한 사람만이 스승으로서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자신을 생각해 보자. 태권도장의 스승은 사범이다. 사범이 진정한 스승으로서의 대우를 받으려면 수련생을 지도함에 있어서 성실과 성의를 다해서 지도하므로 교육적인 효과가 나타날 때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곧 사범의 성품과 노력 그리고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따라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 사범들은 열과 성의를 다해서 열심히 수련생을 지도하므로 존경과 대우를 받는 스승이 되어야 하겠다.

그러므로 해서 자신이 발전하고 도장이 발전하며 나아가서는 태권도가 발전하며 더 나아가서는 우리 나라가 발전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들이 지도한 수련생 모두가 건전한 인격을 갖추고 자기 방어를 할 줄 알며 한 사람의 성실한 사회인으로서 성장해 간다는 사실에 우리 사범들은 자부심과 긍지,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더욱더 노력하므로 존경과 대우를 받는 사범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따라서 태권도 수련을 통해 진정한 우리의 민족 의식이 녹아 있는 우리의 정신을 느끼고 간직하고자 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전통적인 태권도 교육 내용을 다양화함으로써 태권도 수련 내용들이 재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신성환. 도덕적 수련으로서의 태권도
신성환. 무도 태권도에서 정신의 의미
신성환. 무도 태권도 정립 방안
신성환. 전통과 무도 태권도의 원리
신성환. 태권도 인의예의 범절
신성환. 수련 형태별 수련 방법
신성환. 사범이 갖춰야할 행동지침

송형석. 도덕성을 필요로 하는 이유
송형석. 도덕 교육적 책임


출처: 태권도정보연구소 신성환 / 청호태권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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