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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컬럼

태권도의 스포츠화 어떻게 볼 것인가?

by 태권마루 2008.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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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는 해방 후의 시기에 일본에서 카라테(空手)를 배웠던 사범들에 의해 여러 문파로 나뉘어 가르쳐지다가 점차 명칭도 태권도로 통일되어졌고 마침내 대한태권도협회와 국기원이 생겨나면서 오늘날의 틀로 정형화되었다.

그 교육이나 수련방식도 과거에는 지금 생각으로 보았을 때 무식하다고 할 정도의 수련 방법이 많았고 실전적인 테크닉을 많이 가르쳤다. 그러나 태권도경기가 체계화되면서 여러 가지 규칙들이 생겨났고, 득점위주의 경기진행이 일반화되면서 태권도의 수련과 교육 방식도 많이 바뀌었다.

과거에 힘과 끈기, 일격필살(一擊必殺)의 파괴력 등을 크게 강조했던 경향과는 달리 요즘은 스피드와 정확성, 시합에서의 요령 등이 더욱 중요시된다.

또한 손으로 얼굴을 가격하거나 팔꿈치 또는 무릎으로 공격하는 행위도 금지되어 있다. 이렇듯 태권도는 상대방을 일격에 격퇴시킴을 목적으로 하는 실전격투기보다는 오히려 서로 실력을 겨루고 즐김을 일차적 목적으로 하는 태껸이나 씨름과 같은 유희 또는 서양의 스포츠와 비슷한 면을 많이 갖게 되었다.

이러한 태권도는 70년대 초에 우리 나라의 국기(國技)로 지정되면서 본격적으로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여 현재는 세계 최대의 스포츠축제인 올림픽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이제 태권도는 명실상부한 세계인의 스포츠로 정착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태권도계 한편에서 태권도의 스포츠화 경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월드태권도(World Taekwondo)지 1999년 4월 7일자 12쪽에서 인용한 다음 구절은 이와 같은 경향을 적절하게 대변해준다.

… 태권도가 경기적인 측면을 강조하다 보니 무도적인 태권도의 장점은 너무나 잃은 느낌이다. 무도 특유의 신비로움, 강인함, 경외감 등을 갖춘 무도 태권도의 새로운 정립이 필요하다. 이것만이 태권도가 일반인들에게 높은 관심을 끌고 세계적인 한국의 전통무도로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첫 걸음이라 하겠다. … 그러나 태권도 현실은 스포츠적인 경기에만 너무 치중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 무도 태권도야말로 진정한 태권도의 진수이며, 이는 인생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교육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보다도 지역사회 발전과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폭도 넓다고 할 수 있다.

위 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사람들이 태권도의 스포츠화 경향을 우려하는 이유는 태권도가 원래 가지고 있다고 믿어지는 무도적 속성(여기서는 실전성과 정신성 두 가지 속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을 잃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다시 말해 태권도가 경기 위주가 되면서 기술의 실전성이 떨어졌으며, 서양식으로 스포츠화되면서 동양적인 요소들, 예컨대 예의나 인격교육과 같은 정신적인 면이 약화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태권도의 스포츠화 경향을 우려하는 것 같다.

이러한 우려는 일면 타당성을 갖지만 전적으로 옳지는 않다. 이 점을 실전성의 상실과 정신성의 약화 두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기로 하자.

현대사회는 생존을 위해 무술을 연마한다든지 다른 사람과의 싸움을 통해 어떤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열심히 무술을 닦아 천하를 방랑한 끝에 출세한다든지 10년 동안 칼을 갈아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시대는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몸을 가지고 싸워 남을 이김으로써 성공을 할 수 있는, 또는 성공이라는 말이 속되게 들린다면 자기완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군인이거나(이것도 요즘에는 특수부대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중요시되지는 않는다) 전문 격투기 선수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암흑가의 보스를 꿈꾸는 뒷골목 깡패 정도일 것이다.

또 한가지 덧붙이자면 실전성, 실전성 하는데 태권도와 같은 맨손무술은 기본적으로 실전성과 거리가 멀다. 진정한 실전성이라 함은 칼이나 창, 몽둥이, 돌로 상대를 내려쳐서 승리를 얻는 것이다. 주먹이 제 아무리 단단한들 쇠파이프보다 셀 것인가? 과거의 무술이 전쟁터에서 사용되었다고 하지만 실전에서의 맨손무술은 무기술의 부수적인 수단으로 수련되었을 뿐이다. 이렇게 볼 때 태권도의 스포츠화로 인한 실전성의 상실은 크게 우려할 바가 되지 못한다.

다음으로 태권도가 스포츠화되면서 정신적인 측면이 약화되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결론부터 말해서 이는 올바른 방향의 걱정이기는 하지만 그 원인은 사회적인 측면에 있지 태권도의 스포츠화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해방 후 많은 도장들이 생겨나면서 흔히 말하는 '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당시의 '운동'했다는 사람들의 사회적인 이미지는 곧 깡패, 건달과 직결되는 측면이 많았다. 이는 당시의 혼란했던 사회상과도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고 이러한 인식과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보통 고등학교의 운동부라는 곳은 '공부 안하는 깡패 같은 녀석들'의 집합소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시내의 무술도장을 아무 곳이나 찾아가 보자. 그곳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 중고등학생들은 대개 반 정도는 학교에서 '노는 애'로 취급받는 아이들이고, 그들 자신도 무술수련을 통해 정신적인 측면을 함양하겠다는 욕심은 발견할 수 없다. 단지 주먹 한번 남들보다 좀 잘 써서 애들 앞에서 행세 좀 해보려는 욕심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무도를 통한 정신교육이라는 것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또 이런 이야기도 한다. 무술을 하면 남을 함부로 패지 않는다. 싸움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이는 일견 설득력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의 경지에 올라가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다. 대부분은 운동 좀 했네 하며 싸움을 더하고 다닌다. 오죽하면 권투선수나 유단자가 사람을 폭행했을 때 가중 처벌하는 법이 있을까. 무술의 기량 면에서 전국적으로 가장 실력 있다고 소문난 ○○대학교 ○○학과의 경우 졸업생의 상당수가 선배들을 따라 '조직'으로 진로를 택한다는 웃지 못할 소문 마저 나돈다. 이게 사실이라면 사회적으로 공인된 교육기관이 조직 폭력배를 양성하는 곳이 되었다는 말이다. 정말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잘못된 무술교육이 낳을 수 있는 폐해를 살펴보았을 때 태권도나 기타 다른 무도의 스포츠화란 그리 걱정하거나 멸시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싸움이 많이 일어나는 사회보다는 싸움이 없는 사회가 바람직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싸움을 형식화, 제도화시켜 교육의 장, 유희의 장으로 편입시키는 것은 지극히 바람직한 일이다. 무술이 사람을 순화시킨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무술은 사람을 때리고 치는 기술이다.

무술 수련만으로 사람의 인성이 순화되려면 적어도 몇십 년은 꾸준히 수행해야 가능할 것이다. 무술교육의 목적이 폭력배를 만드는 데에 있지 않다면 그에 따른 정신교육이 철저하게 이루어져야만 한다. 무술 교육은 더욱 순화되어야 하고 그 방편으로서 스포츠화되는 것도 바람직하다.

단지 경계해야 할 점은 스포츠화라는 것이 규칙을 가진 시합이라는 경쟁 속에서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잔꾀만 키우는 경기로 변질되는 것이다. 참된 스포츠화는 진정으로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스포츠, 꼭 상대방을 때려눕히지 않더라도 서로 최선을 다해 겨루는 경기가 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남과의 경쟁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 경계할 점은 지나치게 유희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상업화, 전문화되는 것이다. 프로레슬링이 완전히 스테로이드 주사로 키워진 근육질 괴물들의 쇼가 되어버린 것만을 보더라도 이는 지극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우리 나라에서 태권도가 대중스포츠로서 담당할 수 있는 역할은 매우 크다.

중국의 태극권 같은 예를 보아도 기본적으로 사람을 치는 무술에서 출발했지만 대중스포츠로서의 역할을 얼마나 충실히 수행해나가고 있는가. 태극권은 이 과정에서 격투기적인 요소들을 상당수 제거하여 누구든지 쉽게 수련할 수 있도록 많은 변형을 거쳤다.

혹자는 이러한 것들이 무술을 단지 건강 체조나 춤으로 만들어버린다고 개탄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성격이 비뚤어진 사람이 싸움만 잘해서 남을 해치는 것보다는 오히려 낫다고 본다. 건강체조가 되면 어떻고 양생술이 되면 어떤가? 남을 폭행해서 범죄자가 되는 것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백 번 나은 일이 아닌가.

오늘날의 무술교육에 있어서는 동양무술에 있어서의 정신적인 측면, 즉 사람에 대한 예의라든지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는 극기로서의 정신수련, 또 더 고차원적인 목표로서 우주와 자연의 원리를 깨닫게 하는 교육을 중요시해야하며 이러한 수련을 통해 얻어지는 육체적인 건강함, 또 그에 따르는 정신의 건강함 등을 온전히 지켜나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힘(武力)은 그 힘을 올바로 쓸 수 있는 사람이 지녀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사회는 더 어두워지는 것이다. 과거 우리 선조는 무술을 전수할 제자를 고를 때 매우 신중을 기했다. 이 제자가 과연 힘을 올바로 쓸 수 있는 사람인지를 몇 년이고 살펴보았고 그를 위해 혹독하리 만큼의 정신수양을 시켰던 것이다.

중국에 관한 영상자료들을 보면 새벽공원에 노인들이 모여 태극권을 수련하는 모습들이 많이 나온다. 왜 우리 나라에서는 이런 모습들을 볼 수 없는 것인가? 왜 무술이 젊은 사람들, 그것도 좀 껄렁하고 주먹 좀 쓰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인식이 되어 있을까?

태권도는 앞으로도 사회체육의 일환으로서 남녀노소 누구나가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 널리 수련되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출처 : 대한태권도협회 송형석 / 계명대학교 태권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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