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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컬럼

21세기 태권도의 세계화 전략

by 태권마루 2008.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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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세계태권도학회 학술세미나(2001.4) 발표논문

1. 서언

태권도는 우리 나라, 우리민족의 자랑스러운 세계수준의 문화자산 중 하나이다. 세계 160여개국, 5000만여명의 태권도인이 한국을 종주국으로 생각하며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고, 등록된 유단자 수가 440만여명에 정식 사범수만 1만7천여명이 된다.1) 물론 이들 중에는 우리 나라에서 수련하고, 가르치는 한국 태권도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 전체보다 많은 수의 테권도인이 전세계에 펼쳐져 있다는 사실은 우선 양적인 면에서 그 규모의 방대함에 긍지를 느끼게 한다.

질적인 면에서의 태권도에 대한 자랑스러움은 그것이 한국문화속에서 지니고 있는 비중과 세계적 인지도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보통 한국문화를 전통문화와 현대문화로 구분하는데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서구문화의 영향을 받아 발전된 현대문화는 서구에서 도입된 과학문명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그것을 따라가느라고 허덕이고 있다. 이에 반하여, 전통문화에 속하는 태권도는 세계무대에 진출한지 반세기도 안되는 일천한 역사를 가지고, 또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강대국문화가 지배하는 세계적인 문화 획일화 분위기 속에서도 이미 독자적인 세계수준의 명성을 획득하였다. '태권도'라고 말하면 그 종주국인 한국을 연상하지 않는 세계인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올림픽 사상 최초로 태권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태권도는 그 발전과정에서 하나의 전기를 맞게 되었다. 종래의 태권도가 지구상의 한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 무술(武術)이나 지역 무도(武道)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면, 시드니 올림픽 이후의 태권도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 뿌리를 둔 유도와 함께 동양을 대표하는 스포츠로서 세계적인 스포츠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이를 재미있게 표현하면, 종래의 태권도가 행상들이 동네 골목을 누비며 팔러 다니던 무명의 상품이었다고 한다면, 앞으로의 태권도는 대형 백화점에 진열해놓은 소위 '메이커'있는 상품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이 태권도가 세계화의 길에 들어서기까지 한국 태권도인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국외에서는 광활한 지구촌을 누비는 유목민처럼 태권도복 한 벌을 달랑 메고 출국하여 세계 곳곳에 태권도의 뿌리를 내린 사범들의 노고에 제일 먼저 찬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국내에서는 입시위주의 지식중심 교육이 지배하는 척박한 풍토에서 태권도 도장을 개설하여 유사한 다른 무도종목과 경쟁하면서 태권도 인구의 저변확대를 실현한 국내 사범들의 열성 또한 치하할만한 것이다.

그 외에도 이러한 국내외의 태권도의 확산 보급을 격려하고 지원한 대한태권도협회, 세계태권도연맹 그리고 국기원을 비롯한 여러 태권도 단체의 간부나 지도자들의 끈질긴 노력 또한 이 시점에서 기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태권도 철학, 정신, 역사에서부터 실기 등에 관하여 광범한 연구업적을 남긴 태권도 전문가 또는 학자들의 공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필자가 관심을 갖고 다루려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태권도가 아니라 앞으로의 본격적인 21세기 세계화시대에 대비한 태권도인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 한국의 태권도인, 특히 태권도 지도자들이 거둔 공(功)과 함께 과(過)에 대해서도 반성의 기회를 갖자는 것이다. 최근 [월간조선] 2000년 11월호에 실린 한국 태권도 실태에 관한 한편의 글2)은 우리나라 태권도와 태권도 지도자들이 걸어온 길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물론 지나친 표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지적은 태권도 실상을 파헤치는 적절한 것이었고 공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그 글의 내용을 여기에서 중복하여 언급할 생각은 없지만, 그 글이 태권도 지도자들로 하여금 시드니 올림픽 이후의 축제분위기에서 깨어나 태권도의 세계화 과제 해결에 매진하라는 따끔한 경고나 채찍의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필자가 '21세기 태권도의 세계화 전략'이라는 이 글을 쓰게된 직접적인 동기도 물론 학회세미나 발표자료를 준비한 것이긴 하지만 좀 더 직접적으로는 [월간조선]에 실린 그 글을 읽은 후 태권도의 당면과제 해결에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자각과 사명감이 생긴데서 비롯된 것이다.

다만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필자 자신이 태권도를 전공하고 있거나 태권도의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으므로 우리 나라 태권도 학계에서 이제까지 연구개발된 관련 이론이나 우리 나라 태권도 실정을 제대로 파악치 못해 소위 '감(感)'을 잡지 못한 글을 쓰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도 대학 재학시(서울대학교 문리대 사학과)에는 대학교 대표 선수생활을 했고 한국 우수선수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한 적도 있으며, 국기원의 사범자격증도 가지고 있다. 미국 유학시에는 학비를 벌기 위해 태권도 도장을 직접 운영한 경력이 있고, 현재 서울대학교 태권도부 지도교수를 20년 가까이 맡아보고 있다. 따라서 아주 문외한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의미있는 제안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평소에 태권도 발전과 관련지어 지녀왔던 생각의 일단을 피력하게 되었다.

본 글에서는 21세기 태권도 세계화 전략의 일환으로 다음 6개의 전략과제를 선정하여 순서적으로 다루려 한다.

* 세계화시대에 적합한 태권도 정신을 정립하자.
* 경쟁력 있는 태권도 기술을 개발하자.
* 세계 태권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태권도 공원'을 조성하자.
* 타당한 태권도 심사프로그램을 개발하자.
* 도덕,예절교육을 담당할 새로운 효과적 대안으로 태권도를 활용하자.
* 싱크 탱크 자문팀을 운영하고, 태권도의 세계화를 위한 전문인력을 양성하자.


상기 6개의 과제 중에서 처음 4개는 태권도 세계화 전략의 목표, 내용, 방법, 평가와 주로 관련되는 1단계 기본전략에 해당되는 것이고, 다음 2개 과제는 1단계 전략을 응용하고 지원하는 2단계 전략에 해당되는 것이다.

2. 세계화시대에 적합한 태권도정신을 정립하자.

앞으로 전개될 21세기 세계화시대에 들어서면서 태권도 종주국인 우리 나라가 태권도의 세계화를 위하여 우선적으로 착수하여야 할 당면 과제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은 개인에 따라 다르겠으나 필자는 태권도정신의 정립이 가장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와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전세계 태권도 수련자들에게 태권도인으로서의 정체성(identity)을 확립시켜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그들로 하여금 태권도의 의의나 목적, 기대되는 성과 등을 포함하는 태권도수련의 보람과 긍지를 알고 느끼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특히 태권도 수련자들의 대다수는 성인보다는 초등학생인 아동이나 중,고등학생인 청소년들이고, 이 시기에 나타나는 사회심리학적인 특성이 바로 정체성의 확립이기 때문이다.

이미 정설화된 에릭슨(Erik Erikson)의 인간심리,사회발달단계이론에 따르면, 6세에서부터 12세까지의 특징은 지적, 사회적, 그리고 신체적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고, 12세부터 20세 전까지의 청소년기 특징은 자신에 대한 종합적 자아상(自我像)을 확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로 초등학교까지는 태권도수련의 의의에 대한 깊은 생각 없이 자신의 태권도기술이 향상되어 신체적 능력이 신장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들어가면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는 자신은 누구이고 태권도를 배우면 자신은 무엇이 되고 등등의 정체성문제에 관심을 갖게되고 만족한 답을 얻지 못하면 정체성 혼란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이나 타민족의 청소년들에게는 이와 같은 정체성 혼란(identity crisis)이 더 심각할 수 있다. 태권도를 처음 배울 때는 외국의 무도를 배운다는 점에서 신비함이나 신기함으로 만족할 수도 있지만 배울수록 나타나고 또 때로는 자신에게 부과되는 한국문화의 특성 앞에서 갈등이나 반발심리를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태권도에 배여있는 한국적인 자기민족중심주의(ethnocentrism)나 사범과 수련생사이의 수직적 인간관계가 그들의 수평적 인간관계와 충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태권도 수련자들에게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를 포함하는 태권도정신의 확립은 태권도의 세계화를 위해 필수적인 선결과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의 태권도인들이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의 태권도 실상에 대해 실망하는 요인 중에 자주 언급되는 것이 한국의 태권도 기술이나 시설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태권도 이념 또는 정신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였다는 것도 있음을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전세계 태권도 지도자 즉 사범들에게 구체적인 태권도교육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권도의 지도와 수련은 교육학적으로 보면 하나의 교수,학습 활동이다. 따라서 당연히 교수,학습과정에서 사용하는 교수 목표(instructional objectives)가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태권도정신은 그것 자체가 바로 교수목표를 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학의 교육과정이론 중 가장 넓게 받아들여지는 고전적인 이론에 따르면, 교육의 목표는 지식과 지적기능중심의 인지적 영역(cognitive domain), 가치와 태도 중심의 정의적 영역(affective domain), 그리고 운동기능(motor skills)으로 3분된다. 이중에서 태권도정신과 주로 관련되는 목표는 지식과 가치,태도이며, 실제 기술과 관련되는 것은 운동기능이다.

이와 같은 태권도정신과 관련되는 교수목표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지니고 있는 것은 가치와 태도이고, 이는 바로 태권도인으로서의 바람직한 신념체계 및 인격 형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태권도인으로서의 정신적인 성숙은 발렛(Robert E. Valett)이 지적한 것처럼 제일 낮은 단계의 기초적인 인간느낌의 이해단계에서부터 인간느낌의 표시, 자각과 통제, 인간가치의 깨달음 그리고 자아실현의 5개의 인간성숙단계를 거쳐 발전하기 때문이다.3)

이에 비추어 볼 때 태권도 지도자나 사범들이 태권도 수련자들의 인간성숙단계에 대한 깊은 이해에 근거하여 태권도정신을 함양시킬 수 있다면 태권도교육 전문가로서의 소양과 자격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의 사범들에게 태권도정신으로 표현되는 구체적인 지도지침을 제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태권도 종주국으로서의 권위와 위상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태권도정신의 정립이 왜 필요한가를 지적하였으므로, 이제는 그 구현을 위하여 우리나라 태권도 지도자들이 어느 정도의 노력을 경주해 왔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필자의 생각으로는 다양하고 심도 깊은 관련 연구가 적지 않게 추진되었다고 생각한다. 태권도의 발생 및 형성과 관련지어 태권도 정신의 뿌리를 캐는 역사학적인 접근법이 시도되기도 하였고, 태권도의 기본원리를 탐색하므로써 태권도정신연구의 철학적 접근법이 시도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태권도정신 지도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도 있으며, 태권도의 5대 정신이 결정되어 사용되기도 하였다.4)

이와 같은 훌륭한 선행연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태권도정신을 설득력 있게 세계만방에 알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직 한가지 과제를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및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말이 이에 해당된다. 국기원이나 세계태권도연맹 등과 같은 권위 있는 태권도 기관이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합의된 태권도정신을 찾아내어 발표하면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태권도정신을 한번에 완벽한 수준으로 정립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일단 공포한 후 앞으로 주기적으로 수정,보완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앞으로도 한국 태권도계가 태권도정신의 공포를 천연할 경우 결정적인 위기를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해외에 있는 한국인 태권도 사범들이 세계태권도연맹본부를 한국에 둘 경우 태권도 발전에 한계가 있음으로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다 두자는 주장도 심심찮게 들려오는 이 시점에서, 외국의 태권도 단체가 우리보다 먼저 설득력 있는 태권도정신이라도 발표한다면 태권도 종주국으로서의 우리의 체면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필자는 오래전부터 우리 나라의 태권도계가 체계적인 태권도정신을 공표하고 있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겨왔다. 그리고 혼자서 태권도정신이 어떠한 모습을 지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본 적도 있다. 이 글에서는 지면의 한계가 있음으로 다루지 못하지만 가까운 시일내에 기회가 온다면 태권도정신의 시안이라도 발표하려고 한다.

3. 경쟁력 있는 태권도기술을 개발하자.

21세기의 본격적인 세계화시대에 진입하면서 태권도가 당면한 또 하나의 중대한 과제는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더욱 발전하기 위하여 경쟁력 있는 태권도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물론 반세기도 안 되는 사이에 한반도의 극소수만이 수련하던 지역 무도(武道)에서부터 세계수준의 스포츠종목으로 성장한 것을 보면 그 경쟁력은 충분히 경험적으로 입증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그 장래에 대한 걱정은 한낱 기우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계화가 결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 강대국의 이익위주로 진행되고 있고, 따라서 작은 것, 지역적인 것이 흡수되거나 도태되는 세계적 추세에서, 태권도 자체의 생명력이나 우리나라의 태권도 종주국으로서의 위치가 언제 위협받게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허울뿐인 세계화'속에서 동양의 한 소국(小國)에 뿌리를 둔, 그리고 강대국의 입장에서 보면 주변문화에 지나지 않는 태권도가 언제까지 경쟁력을 지닐 수 있을지, 또 현재와 같은 영향력과 발전추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태권도의 생존과 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태권도의 경쟁력 있는 기술 개발이라고 주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일찍이 자본주의 경제의 창시자인 스미스(Adam Smith)가 지적한 '보이지 않는 손' 그리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프리이드만(Milton Friedman)의「자유선택의 경제원리」(Free to Choose)에서 지적된 비교우위(比較優位)를 유지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같은 종류의 무도나 스포츠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우월하여야 하며, 근본적으로 태권도 수요자이며 소비자인 전세계 태권도 수련자들의 관심과 흥미를 지속적으로 끌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1970년대초 미국 유학시에 태권도 도장을 운영할 때 태권도의 목적으로 'Self Defense(자기방어)'와 'Body Fitness(신체건강)'라는 2개의 어휘를 내걸고 태권도를 홍보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한 목적은 지금도 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 위에다 또 다른 목적을 추가하여 태권도 기술의 경쟁력 제고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려한다.

첫째, 세계의 모든 무도 및 스포츠기술을 태권도에 도입하여 최선의 방어 및 공격메커니즘을 개발하는 것이다.

물론 현행 태권도가 우수한 무도 및 스포츠종목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태권도의 방어 및 공격기술을 세부적으로 분석해 보면 약점을 지닌 요소도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태권도의 주 기술인 막기와 지르기에서 시합식의 습관화로 팔과 손을 거의 쓰지 않게 됨에 따라, 우리 몸의 일부를 퇴행시켰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와 관련지어 필자는 10여년전에 태권도의 개선방안에 대한 글을 발표하면서 뒷다리만을 사용하여 뛰어다니다가 앞다리가 퇴화된 캥거루를 태권도에 비유한 적이 있다.5) 이와 같은 태권도의 기술상의 허점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의 여러 민족들이 지니고 있는 전통 무도나 스포츠를 비교분석한 후 우리 체질에 맞는 다양한 방어와 공격 기술을 도입하고 태권도에 접목시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 21세기 문화의 특징중의 하나가 잡종성(雜種性, hybridity)이며, 동종교배는 약하고 이종교배는 강하다는 원리를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모든 태권도 기술과 동작의 건강상의 적합성(fitness)에 대한 학문적 연구에 착수하여야 할 것이며, 그에 따라 타당한 태권도 이론을 세계에 공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 나라에서 태권도 기술 및 동작과 관련하여 실시된 선행연구는 그 수적인 면에서 적지 않다. 그러나 체계성을 갖추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따라서 세계 학계에 제시할만한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하였다. 현 시점에서 한국 태권도계가 당면한 문제는 이제까지는 태권도기술이나 동작의 생리학적, 의학적 적합성에 대한 검증 없이 동양의 비기(秘技)라는 명목하에 전세계에 태권도 기술을 매출해 왔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제 세계 스포츠반열에 오르게 됨에 따라 세계인들에게 특히 매사에 합리성과 타당한 근거를 요구하는 서구인들에게 우리의 태권도를 투명하게 내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최근 우리 나라 스포츠학계에서도 영어문화권에 편향된 연구 자세에 대한 반성의 소리가 높고, 비교문화적 접근을 통하여 우리문화의 특성이 반영된 이론이나 원리를 찾으려는 요구가 비등하고 있다.6) 이처럼 대부분의 운동종목이 서구문화에 뿌리를 둔 스포츠학계에서도 한국적인 토착성 탐구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이때에 우리 나라에 뿌리를 둔 태권도에 대한 이론 정립을 소홀히 할 경우 태권도 종주국으로서의 위치를 어떻게 지킬 수 있겠는가?

셋째, 앞에서 강조해 온 방어 및 공격 중심의 무도 태권도의 기술과 광범한 건강 중심의 기술개발과 함께 태권도를 정신수양이나 예술차원으로 승화시키는 무예(武藝)중심의 기술을 개발하자는 것이다.

서양사람들의 시각으로 최근 동양의 무술(martial arts)을 종합 정리한 결과에 따르면, 태권도는 다른 무술 즉 공수도, 합기도, 유도, 쿵후, 태극권, 검도 등과 함께 열거되었으나 발기술을 많이 구사한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어떤 차별화된 장점은 부각되지 않고 있다.7)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 예를 든다면, 불교의 선(禪) 위주의 정신훈련(mental training) 활동을 태권도 수련에 체계적으로 포함시키거나 한국 전통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무속신앙적인 신바람춤을 태권도 수련에 포함시켜 문화적 독창성을 인정받고 태권도 시합이나 시범이 무미건조하다는 인상을 불식시켜야 할 것이다.

물론 이와 유사한 시도가 몇몇 태권도 선각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고, 구체적으로는 태권도 무용이나 태권도 체조의 개발이 그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인의 민족정서, 민족혼이 살아 숨쉴 수 있는 차원 높은 기술개발에 가일층의 깊은 관심과 열성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4. 세계 태권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태권도 공원'을 조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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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진입한 현시점에서 태권도 종주국인 우리 나라 태권도 실태중에 가장 부끄러운 것은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태권도인들에게 보여줄 것이 없다는 것이다. 태권도 발상지인 우리 나라에 대해 경외심과 기대감을 갖고 입국하지만 그들이 태권도의 대표시설로 가볼 수 있는 곳인 국기원을 방문한 후에는 시설의 빈약함과 관리체계의 미비로 인하여 낙담과 실망만을 안은 채 귀국한다는 것이 우리 나라 태권도인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외국에 나가있는 한국인 태권도 사범들은 제자들을 인솔하여 모국방문 하기를 꺼려하고, 그들을 맞이하는 이곳 태권도 지도자들의 심정도 그들과 비슷한 상태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우리 나라 태권도인들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여줄 만한 것이 거의 없는 정도의 역사성과 뿌리가 약한 우리 나라 태권도가 이 만큼의 성장을 이룬 것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우리의 역량을 증명한 것이 아니냐고 억지를 부릴 수도 있다. 또 외국의 스포츠를 예로 들어,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인 축구의 발상지인 영국이나 농구의 발상지인 미국에 갈 경우 경기장 외에 축구와 농구의 기원에 대한 역사적 유적, 유물에 대해 볼만한 것이 얼마나 있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것은 늦은 감은 있지만 태권도 공원 조성사업이 현재 추진되고 있고,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질 경우 우리 나라 태권도인들의 체면을 어느 정도 회복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작년(2000년)에 한 정부책임자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07년까지 100만평부지 위에 거창한 '태권도 공원'이 완공될 수 있다고 한다.8)

아직까지 태권도 부지가 확정되지 않은데다 태권도 공원 조성사업을 적극 추진했던 정부책임자가 경질되어 일말의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렵게 추진되는 사업인 만큼 이왕이면 제대로 되게 하기 위하여 몇 가지 제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이미 발표된 "부지 100만평 위에 10만평의 태권도 도장, 30만평의 태권도 수련단지, 20만평의 태권도 관광단지, 20만평의 호국청소년단지, 10만평의 영상단지, 10만평의 한방기공단지 등을 2007년까지 완성할 계획"에 대해 수정 보완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시함으로써, 그야말로 명실공히 세계 태권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태권도 공원을 조성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외형적인 볼거리 제공도 중요하지만 내실을 기하는 시설이 되어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발표된 기본계획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100만평을 구성하고 있는 단지 중에는 태권도의 R&D(연구와 개발)를 위한 시설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즉, 태권도 연구소가 있어야 하고, 태권도 전문인력을 양성해 내는 태권도 학교(대학원 수준)가 있어야 마땅한데 그러한 시설이 계획 속에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앞에서 태권도 기술개발과 관련지어 지적한 바 있지만, 태권도의 역사성이나 과학성이 빈약한 상황하에서 앞으로 세계 태권도를 주도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태권도의 정신과 기술을 계속 연구 개발하여 태권도의 질적 제고를 시도하지 않으면 안될 입장에 처해있다. 동시에 이러한 과제를 추진할 수 있는 태권도 엘리트 양성체제가 수립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지어 외국의 사례 하나를 소개하기로 하자. 중국의 소림사는 외국 방문객이 연간 150만명이나 되고 중국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곳은 이미 중국의 장구한 역사와 문화 속에서 설립되고 발전해온 만큼 우리와는 구별되는 이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우슈(武術)수련을 위하여 사용하는 다양한 보조기구와 시설, 그리고 화려한 전시물들은 그들의 끊임없는 연구노력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소림사를 비롯한 주변 도장에서 실제로 양성하고 있는 수련자 수가 수 천명을 헤아린다는 사실은 그들이 인재 양성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 수련자 중에는 외국인도 적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앞으로 조성될 태권도 공원의 중앙에는 태권도 연구소와 태권도 학교(대학원 수준)가 설치되어야 하고, 그 주변에 태권도 도장이나 수련단지가 개설되어야 할 것이다. 관광단지는 가급적이면 공원 밖 주변에 설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태권도 공원 조성사업 책임자들이 만의 하나라도 불공보다 잿밥에만 마음을 두거나 상업주의에 따라 관광단지에만 더 관심을 기울일 경우 태권도 공원은 오염되고 그 빛을 잃게 될 것이다.

태권도 공원 조성과 관련지어 두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앞에서 지적한 내실화와 함께 상징성을 높이는 시설이 되어야겠다는 것이다. '태권도 공원'은 다른 명칭으로 '태권도 성전(跆拳道聖殿)'이라고도 불리어지므로, 그 이름에 걸맞게 세계 태권도인들이 그곳을 방문할 경우 첫인상은 물론 체재할수록 세계 태권도 발상지와 중심지로서의 신비함과 경외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제는 어떤 점에서 보면 내실화 과제보다도 훨씬 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세계 태권도인들이 느끼는 의식과 감각의 공통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단 건물이나 시설을 완공한 후에는 시행 착오를 거쳐 수정,보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조성될 태권도 공원의 건물이나 시설의 설계에는 태권도인 외에도 많은 관련 학자나 전문가들의 지혜를 반영하여야 할 것이다. 태권도 공원 조성사업의 추진을 발표했던 정부책임자의 발표 내용중에 "동양적인 신비감과 경외로움이 나타나는 전통 한식건물단지를 조성하고…." 운운의 언급이 있었으나 그 준비를 위한 체계적인 계획이나 실행 단계 및 절차에 대한 관심이나 언급이 전혀 없어 공원조성이 계속 연기되다가 마지막 순간에 졸속으로 끝나지나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전통 한식건물만을 웅장하게 세운다고 해서 신비감이나 경외로움이 배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 곳에는 깊이 있는 역사학적, 철학적, 미학적, 종교적, 문화인류학적 배려가 들어있어야 하고 또 그것이 살아 숨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관련 책임자들의 가일층의 자각과 맹성을 기대한다.

5. 타당한 태권도 심사프로그램을 개발하자.

지난 반세기동안 우리 나라 태권도가 거둔 발전과 성장은 괄목할만하다. 이제 태권도는 세계 무도계와 스포츠계의 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니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그러나 그 동안 단 한가지 퇴보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태권도에 대한 일반인들의 경외심(敬畏心)이 축소내지 추락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나간 날을 뒤돌아보면, 필자가 고등학교 입학과 함께 마음과 몸을 좀 강하게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에서 잔뜩 겁을 먹은채 서울 안국동에 있는 한 도장의 문을 들어섰던 195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태권도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서울시내 태권도장의 수가 10개를 넘지 않았고 태권도 수련자 수도 매우 적었지만, 태권도 검은띠는 일당백의 초인적인 인간으로 널리 알려졌었다. 2년반의 고생 끝에 고등학교 졸업 전에 6개월에 한번씩 있었던 심사에서 검은띠를 딴 후 그것을 두른 도복을 팔에 끼고 동네에 들어서면 모든 행인들이 겁먹은 표정으로 흘낏거렸고 시비 걸기 즐겨했던 동네 깡패들도 꼬리를 감추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든 요즈음 아파트사이를 태권도복을 입고 뛰어 다니는 고사리손의 어린아이들이 태권도 2, 3품단이 되었다고 해도, 또 고등학교 학생들이 3단, 4단을 땃다고 자랑해도 놀라는 사람도 없고 겁먹는 사람도 없다. 농구나 축구 그리고 육상 선수처럼 운동하는 어린이, 운동하는 청소년으로밖에 생각해 주지 않는다.

그러면 지나간 50여년 사이에 왜 태권도 발전과는 반비례해서 태권도에 대한 존경과 두려움이 사라졌을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으나 태권도 승단심사에서 그 답을 찾는 것이 가장 빠를 것 같다. 즉, 승단자체를 너무 인플레이션(inflation)시켜서 단의 가치가 떨어졌고, 심사과정도 형식적으로 치러졌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여건에서 태권도를 진정 아끼고 사랑하는 태권도인이라면 누구나 실추된 태권도의 권위를 회복시키고 싶어한다. 그럴 경우 태권도심사체계 자체를 개혁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처럼 생각된다. 또 태권도 종주국으로서 전세계 태권도계에 타당한 태권도심사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심사방식의 시범사례를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 글에서는 앞으로의 바람직한 심사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몇 가지 대표적인 원칙 및 기준만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려고 한다.

첫째, '수행평가(遂行評價, performance assessment)'의 방식을 조금씩이라도 시도하는 것이 필요할 듯 하다. 최근에 초,중등학교 교육현장에서 교수,학습과정의 질적(質的)인 측면을 평가하고 그 과정의 개선을 도움으로써 교사 개개인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학생 개개인의 교육적 성장을 돕기 위해, 전통적인 학생평가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수행평가이다. 다시 말하면, 학생 스스로가 자신의 지식이나 기능을 나타낼 수 있도록 답을 작성(구성)하거나, 발표하거나, 산출물을 만들거나, 행동으로 나타내도록 요구하는 평가 방식이다.9)

물론 학교현장에서 사용하는 평가방식을 태권도 심사에 적용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태권도 도장에서 실시되는 정기심사나 국기원에서 실시하는 심사대회에서 수십명씩을 1개조로 하여 품새심사를 하고, 2명씩을 짝을 지어 한번 겨루기를 하고, 그리고 발차기 시범을 몇 번 보이는 것으로 끝나는 상황에서 탈피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신체적 특징에 맞는 기술개발을 발표하게 하거나,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기술 외에 색다른 방어와 공격기술을 시범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그것은 수행평가의 원칙을 적용하는 길로 들어선 것이다.

필자가 최근인 2000년 11월 4일 국기원에서 개최된 '2000년도 제3차 서울시 고단자(4, 5단) 심사대회'를 참관한 바에 의하면, 수행평가의 원칙적용은 눈에 뜨이지 않는다. 특히 4단 이상의 고단은 사범자격 수여의 필수조건에 해당되는데 실기심사 이후에 실시된 필기 시험에 포함된 20개 평가문항을 분석해 보면 사범으로서 지녀야 할 자격측정과는 거리가 있다. 물론 전에는 실기시험만으로 끝나던 것을 새롭게 필답시험을 적용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도 있겠으나, 단순한 단편적 지식(factual knowledge)기억을 측정하는 것으로 끝났기 때문에 태권도 지도자로서 지녀야 할 '고등정신기능(higher mental process)'을 평가하는 것과는 부합되지 않는 것 같다. 앞으로 평가전문가들의 자문이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둘째, 태권도 수련의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을 '준거기준평가(criterion-referenced evaluation)'뿐만 아니라 '규준기준평가(norm-referenced evaluation)'까지도 적용했으면 한다. 준거기준평가는 학습목표를 평가의 준거로 삼아 학습목표의 도달여부와 그 정도를 확인하고 점검하는 평가를 의미한다. 즉, 학생들이 받은 시험점수를 상대적으로 비교하지 않고 오직 학습 목표에 도달하였는지의 여부를 판정하는 것이다. 반면에, 규준기준평가는 학생들간에 현저한 개인차가 있고 그것은 교육의 힘으로 극복하기 어렵다고 믿으며, 학생 개인의 성취도를 최대한 정밀하게 변별하여 특정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학생과 도달할 수 없는 학생을 가려내는데 그 목적을 두는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2000년도 제3차 서울시 고단자(4, 5단) 심사대회'를 참관하면서 느낀 것은 어떤 응심자는 고단자가 되기에는 너무나 빈약한 기술과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 중에서 몇 명이나 승단심사에서 탈락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거의 탈락자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준거기준평가에 따라 어느 수준만 되면 합격판정을 내린 것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태권도 고단자의 경우에는 규준기준평가의 기준을 엄정하게 정해놓고 그 수준에 못 미치는 응심자를 탈락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태권도의 기술이 그리고 앞으로는 단계적으로 인격이(이 문제는 변별하기가 쉽지 않아 많은 연구가 필요한 것이지만) 고단자로서 부적절하거나, 태권도 수련으로도 극복하기 힘든 신체적인 열등 조건을 지닌 응심자의 경우에는 3단까지만 수여하고 그 이상은 허용치 말아야 할 것이다. 이는 물론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인간관계 원리에 해당되는 인정주의(人情主義)에 배치되기도 하고 인권문제의 소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다른 스포츠나 무도의 경우, 예를 들어 키작은 사람이 농구선수가 될 수 없는 것이나 체중이 가벼운 사람이 씨름선수가 될 수 없다고 해서 농구계나 씨름계를 비난하는 사람이 없는 것에 비추어 본다면, 태권도 심사에서도 규준기준평가원칙에 따라 부적격자를 탈락시킨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승단심사 = 승단'이라는 인식과 따라서 누구나 심사만 보면 승단할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은 태권도계에서 사라져야 하고, 일정 비율의 승단탈락자는 심사때마다 반드시 있어야하는 것이다. 태권도에 대한 경외심을 되찾는 지름길이 바로 그곳에 있다는 것을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6. 도덕,예절교육을 담당할 새로운 효과적 대안으로서 태권도를 활용하자.

우리 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은 전반적으로 최근 심각하게 대두되는 아동 및 청소년들의 도덕성 쇠퇴와 일탈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몇몇 나라의 구체적인 실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우리 나라의 경우 1990년대 말에 접어들면서 전반적인 학교붕괴, 교실붕괴와 함께 도덕성 상실현상이 나타나 초중고교생들의 학교폭력은 물론 왕따현상이 학생4명중 1명꼴로 나타나는 심각한 수준에 도달하였다. 그 외에도 한 대학생이 부모를 토막살해한 사건과 함께 청소년들의 패륜범죄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1990년대 초부터 초등학교에서조차 학교붕괴가 나타나 교사 통제가 불가능하고 학급의 일상적인 생활과 학습기능의 마비현상이 적지 않게 나타난다고 한다. 청소년들의 의식상의 특징은 미래에 대한 긍정적 시각의 부재, 기성세대 가치관의 부정, 사회에 대한 봉사의식퇴조로 나타나고 있어, 삶의 목표와 도덕의식이 약화되는 것으로 밝혀진바 있다.10) 미국의 경우에는 최근인 1990년대에 들어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학교총기사고를 통하여 10대들의 도덕적 불감증과 인명경시풍조가 팽배함을 알 수 있다. 또 일반적인 청소년들의 도덕의식쇠퇴의 증거로 청소년범죄, 권위에 대한 무례, 학교 폭력과 야만행위, 아이들 상호간의 잔학행위, 마약과 음주, 10대의 성행위 등이 지적되고 있다.11)

본 글에서는 일부 나라의 실례만을 들었지만,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자국 청소년들의 도덕성상실문제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최근 전세계적으로 보급되는 폭력적인 비디오게임과 영화 그리고 컴퓨터의 몰입을 통한 사회적 공공의식의 결여로 인하여 도덕성의 쇠퇴는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세계적인 청소년들의 도덕성약화 추세하에서, 더구나 종래의 전통사회에서 청소년들의 도덕적 사회화의 동인(agent)으로 작용하던 가정과 학교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감소하면서 오늘날 그 역할을 담당할 새로운 대안(代案)을 목마르게 찾고있는 상황이다. 본 글에서는 그 대안의 하나로 태권도를 활용하자는 주장을 펴는 것이다. 즉, 학교 및 사회 체육에서 태권도 수련을 담당하는 사범들이 아동과 청소년들의 도덕성 함양을 위한 보충적인 임무를 담당하자는 것이다.

태권도 사범들의 도덕,예절교육 담당자로서의 새로운 임무를 주장하는 근거는 우리 나라에서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는 적지 않은 사범들과 학부모들의 경험담에서 비롯된 것이다. 많은 사범들이 실제로 도장에서 태권도 수련뿐만 아니라 규범 및 예절교육을 시키기 때문에 도장을 다닌 후에 수련자들의 언행이 눈에 뜨이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하였다는 것을 많은 부모들이 지적하면서 사범들에게 고마워하는 것을 듣고 본적이 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부모의 말도 또 학교 선생님의 말조차도 거의 듣지 않는 문제성을 띤 아이들도 사범의 지도에는 순종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태권도 수련의 도덕,예절교육적 성과는 우리 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중의 하나는 미국의 전체 이민자중 가장 성공한 100인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이준구(李俊九, 미국명 : Jhoon Rhee) 태권도 국제지도재단이사장이 1989년부터 미국 워싱톤 디씨 초등학교에서 실시한 태권도 수련을 통한 <규범의 기쁨>이라는 교육프로그램이다.12)

이 프로그램은 미국 교육부장관의 부탁을 받아 그가 태권도를 중심으로 규범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시한 것인데, 그 핵심은 '챔피온이 갖출 7가지요소'를 다음과 같이 결정하고 또 수련자들에게 그것을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따르게 한 것이다.

- 태권도 챔피온은 수족(手足)의 속도가 빨라야 하는 것 같이 인간 챔피온은 머리가 빨리 돌아가야 한다. 즉 머리가 빨리 돌아가려면 독서를 많이 하여 머리에 지식이 풍부해야 한다.

- 태권도 챔피온은 신체적 인내가 있어야 하는 것 같이 인간 챔피온은 한번 목표를 세우면 그 목표를 이룰 때까지 끈기있게 노력해야 한다(시작하면 끝을 내는 습관).

- 태권도 챔피온은 때리고 방어하는 타이밍이 좋아야 하는 것 같이 인간 챔피온은 일상 생활에 시간 관념이 확실해야 한다. 약속 시간을 항상 어기는 습관을 갖는 자는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 태권도 챔피온은 아무리 속도가 빠르고 타이밍이 좋아도 힘이 없이는 적에게 타격을 못 주는 것과 같이 인간 챔피온은 지식이 없이는 정글 같은 인간사회에서 싸울 수가 없다.

- 태권도 챔피온은 한 발로 찰 때 다른 발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것 같이 인간 챔피온은 지(知),덕(德),체(體)의 균형이 잡힌 자라야 한다.

- 태권도 챔피온은 몸이 부드러워야 하는 것 같이 인간 챔피온은 마음에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 태권도 챔피온은 족기(足技)를 보일 때 자세가 곧아야 모양이 나는 것 같이 참 인간의 미(美)는 양심이 곧은 사람이 만인(萬人)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1989년에 적용되기 시작한 이래 효과가 매우 좋은 것으로 밝혀져 이준구씨는 1992년에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오늘의 등불'이라는 상을 받은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국내외의 사례 등을 통하여 개관한 바와 같이 최근 세계의 많은 나라들은 제2세들을 대상으로 하는 규범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상황에 처해있고, 또 태권도가 그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또, 필자는 우리 나라 교육부에 의하여 1992년에 고시된 제6차 교육과정과 1997년에 고시된 제7차 교육과정 중,고등학교 도덕과교육과정과 교과서(단일 국정교과서) 편찬책임자로 일하면서 학생들의 도덕,윤리적 행동실천을 위해서는 학교내의 교실수업을 보조해 주는 어떤 활동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해왔다.

만약 앞으로 대한태권도협회나 세계태권도연맹을 중심으로 이준구씨가 미국에서 예시한 바와 같은 세계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태권도 규범(도덕,예절)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보급할 수만 있다면, 우리 나라는 물론 전세계 부모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태권도의 세계화를 위한 가장 확실하면서도 효과적인 길이 이곳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7. 싱크 탱크 자문팀을 운영하고, 태권도의 세계화를 위한 전문인력을 양성하자.

우리 나라, 우리민족의 대표적인 문화자산중의 하나인 태권도가 21세기에도 살아남고, 발전하기 위하여, 또 우리 나라가 태권도 종주국으로서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한국의 태권도인들이, 특히 태권도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이 수행해야 할 과제들에 대해서 앞에서 몇 가지 대표적인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이제 필자는 이 글에서 앞에서 지적한 모든 과제를 수행해 나아가는데 필수적이고 종합적인 과제에 해당되는 마지막 과제를 제안하려한다. 그것은 태권도 두뇌집단 자문팀을 구성하고 활용하여 세계 및 우리 나라 태권도계를 대표하는 태권도 기구운영의 전문화와 체계화를 이룩하고, 동시에 앞으로의 세계화, 정보화시대에 대비한 태권도 전문인력을 중,장기계획을 세워 양성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제안은 기존 태권도 지도자들에 대한 불신이나 그들이 이룩한 업적을 과소평가하려는데 그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보다는 앞으로 너무나 급격하게 또 예상키 어려운 방향으로 태권도 관련 사태가 전개될 미래사회에서 기존의 인적구성이나 운영체계만으로는 대처하거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에 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하자는데 그 뜻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구체적으로는, 빠른 시일내에 대한태권도협회나 세계태권도연맹 산하에 태권도 관련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태권도 싱크 탱크(Think Tank) 자문팀」을 결성하여 운영하기 시작하고, 동시에 현재 몇몇 태권도학과를 비롯한 관련학과와 태권도 공원내에 개설할 것을 제안한 태권도 대학원에서 실시할 전문인력양성체계에 대한 재검토 및 개선안을 실행에 옮기자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제안은 물론 필자가 이 글의 '1. 서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미 태권도계의 지도자들이 과제수행을 위한 '총괄적 대계획(Grand Planning)'을 세워놓고 단계적으로 착수 내지 추진에 들어간 것을 필자만이 모르고 분별없이 피력하는 단견(短見)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하간 기회가 주어졌으므로 앞으로 자문팀운영과 전문인력양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단편적인 제안을 하려고 한다.

먼저, 자문팀운영에 대해서는――.

첫째, 태권도자문팀은 태권도실기전문가만으로 구성해서는 안되고 광범한 태권도관련분야의 학자나 전문인력은 물론 해외 주요나라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사범 및 외국인 사범들을 포함하는 지역전문가, 그리고 사이버 태권도 세계공동체의 결성을 추진할 수 있는 컴퓨터 전문가들을 포함하여야할 것이다.

특히 학자, 교수들을 선정하는 경우에는 앞에서 지적한 전략과제들을 수행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학문분야를 전공하는 사람들, 구체적으로는 역사학, 철학, 의학, 생물학, 건축학, 미학, 문화인류학, 종교학, 교육학, 심리학, 컴퓨터공학 등의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하여야할 것이다. 그리고 지역전문가들의 경우에는 대표적인 외국어 언어권에 따라 선정할 수도 있고, 요새 유행하는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의 '문명충돌론(The Clash of Civilization)'의 8개 문명집단 분류에 따라 선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태권도자문팀은 가급적이면 태권도관련 직업에 종사하는 태권인, 예를 들어 국내외의 사범들이나 태권도학과 및 관련학과 교수들이면 더 말할 필요가 없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과거에 태권도를 수련한 경험이 있어 태권도에 대한 애착과 열성을 보일 수 있는 사람 중에서 선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자문팀 운영을 위한 인선문제와 관련되는 것인데, 효율적인 방안을 제시하면, 우리 나라 대부분의 대학교에는 태권도 동문회가 결성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대학 재학 중에 다양한 학문분야를 전공하면서 태권도를 수련한 졸업생들이 졸업 후에도 계속 친목모임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전공이나 직업에 따라 자문위원을 선발하면 될 것이다. 필자가 졸업한 대학교의 태권도 동문회원들의 경우에는 태권도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무조건 협조할 수 있다는 열혈 태권도인이 적지 않다. 따라서 책임있는 태권도 단체가 몇몇 대표적인 대학교 동문회와 접촉할 경우에는 그것이 주최측에 부담을 주지 않는 수준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

다음으로, 전문인력양성에 대해서는――.

첫째, 필자가 알고있기에는 몇몇 태권도학과에서 이미 학부졸업생을 배출하기 시작했고, 대학원도 설치하였다고 하는데, 각 대학교의 교과과정이나 수업실태를 분석해보지 않은 상황에서 태권도 전문인력양성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태권도학과에서 단순히 태권도 실기수련만을 담당하는 것은 아니고 태권도에 대한 학문적 연구도 병행하고 있을 것이므로 전문적인 내용은 태권도학과 교수들에게 맡기고 가장 일반적인 학문적 접근법만을 제시함으로써 전문인력양성의 일반적 방향을 제시하려고 한다.

필자가 가장 최근인 2000년 말에 참고한「한국학술연구의 동향과 전망」의 체육학분야 연구동향과 전망에 따르면 우리 나라 스포츠를 인문과학에 속하는 체육사,체육철학, 사회과학에 속하는 스포츠사회학,스포츠심리학,스포츠교육학,스포츠행정경영학, 그리고 자연과학에 속하는 운동생리학,운동역학,체육측정평가,특수체육학으로 분류하여 다루었다.13) 따라서 태권도전문인력양성의 기준이나 방향도 상기한 바와 같은 스포츠연구의 3분법을 따르거나, 아니면 종래대로 태권도연구영역분류에서 태권도정신(역사,철학,사상)과 실기의 2분법을 따르는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앞으로의 세계화시대에 대비하여 태권도 전문인력양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우리 태권도와 경쟁관계에 있는 세계 각 민족의 전통적인 격투기 또는 무도에 대한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본 글의 앞부분인 '3. 경쟁력 있는 태권도기술을 개발하자'에서 태권도기술을 중심으로 하고 세계격투기 및 무도의 장점만을 추가 접목시켜 잡종성(雜種性) 태권도를 점진적으로 개발하자는 제안을 한 바 있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각 나라 격투기나 무도에 대한 전문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최선의 방법은 우수한 태권도 전문가를 각 나라에 유학시켜 그곳의 문화 및 언어에 대한 파악은 물론 그곳에서 실기를 익히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와 관련지어 본 글의 앞부분인 '4. 세계 태권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태권도 공원을 조성하자'에서 공원의 중심부에 태권도 연구소를 설치하자고 주장한 바 있는데, 그 연구소가 외국의 격투기 및 무도별로 연구실을 설치하여 각 나라의 실태에 대한 연구와 전문인력을 양성하면 비교문화적으로도 매우 의의있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8. 결언

작년 말에 한 월간지에 실린 글(송재헌, "무도본산의 위엄도 예의도 철학도 없다", 「월간조선」, 2000년 11월호, pp. 456-463)을 읽고, 필자는 우리 나라 태권도계가 이대로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서 비전문가로서의 한계성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어 집필에 착수했고 그 과정에서 평소에 지녀 왔던 생각을 종합 정리하여 이번 「세계태권도학회」 세미나에서 발표하게 되었다.

앞에서 「태권도의 세계화 전략」이라는 주제 아래, 전략 과제들을 순서적으로 다루었으나 다시 검토해보니 미흡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따라서, 이 '결언'에서는 집필과정에서 빼어놓고 넘어간 내용이나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내용을 6개의 과제별로 추가하여 언급하려고 한다.

「세계화 시대의 적합한 태권도 정신을 정립하자」에서는 태권도정신의 정립이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할 이유와 근거는 제시하였으나 태권도정신 자체를 제시하지는 못하였다. 이미 글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필자 자신이 아직도 태권도정신의 핵심요소에 대한 확신이 서지 못했고, 따라서 그것이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태권도정신이나 태권도 철학에 관한 훌륭한 선행 연구들이 적지 않게 발표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종합 정리하면 태권도 정신의 윤곽이 밝혀질 수 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발표된 내용은 우리 한국의 태권도인들에게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겠으나, 역사와 전통 그리고 문화의 다양성을 지닌 세계 태권도인들에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앞으로 세계화시대에 적합한 태권도정신을 정립하는 것이 당면 과제로 남아있다.

「경쟁력 있는 태권도 기술을 개발하자」에서는 현 시점에서 태권도를 김치, 불고기, 비빔밥 등과 함께 우리 나라, 우리민족을 대표하는 문화자산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고, 앞에서 예든 음식물들이 세계인들의 기호에 맞게 맛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면, 태권도는 기술로서 승부를 걸어야겠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비교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공격과 방어기술을 개발하고 세계인들의 관심과 흥미를 끌 수 있는 볼거리를 제공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경기 태권도가 일반 관중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고, 필자가 2001년 4월 16일에 국기원에서 거행된 「국가대표 선발 최종대회」의 일부를 참관한 바에 따르더라도 시합내용이 역시 단조롭고 지루하며 극적이고 신명나는 맛이 부족한 듯 하였다. 앞으로는 세계 모든 전통무도와 스포츠의 장점을 혼합하여 잡종성의 신종 태권도를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나라 일본의 국기인 '스모'가 일본인들의 끊임없는 연구개발에 의해 발전해 왔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세계 태권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태권도 공원을 조성하자」에서는 '태권도 성전(跆拳道 聖殿)' 이라는 명칭에 걸맞는 태권도 중심지를 만들자고 제안하였고, 특히 태권도의 미래에 대비하여 연구 및 교육의 시설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 태권도인들이 유념하여야 할 것은 아무리 건물이나 시설을 잘 세운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동양적인, 한국적인 신비함이나 경외심이 배어 나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와 전통 속에서 조그마한 뿌리라도 찾아내어 밝히면서, 또 타민족의 문화적 특징과 장점을 우리것에 흡수 포섭하면서 먼 앞날을 내다보며 오늘 첫걸음을 내디디기 시작하면, 몇 백년 몇 천년 후의 우리 후손들은 그야말로 세계적으로 유서 깊은 태권도 역사 유적지를 이 땅위에 갖게 될 것이다.

「타당한 태권도 심사프로그램을 개발하자」에서는 국기원에서 실시하는 승단심사제도 자체을 개선하지 않고는 실추된 태권도에 대한 일반적 인식과 권위를 회복시키기 어려움을 지적한 것이다. 거의 모든 응심자들이 심@사만 보면 승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미 심사라고는 할 수 없고 승단을 위한 요식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앞으로 3단 심사까지는 종전과 같이 하더라도 태권도사범 자격요건이며 고단자인 4단 심사부터는 엄정한 기준을 적용하여 수백명의 응심자 중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 두 서너 명만을 발굴해내는 방식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옛날 과거시험에서 무과의 합격자를 여러 단계를 거쳐 결정했던 것처럼, 출중한 신체적 조건에 강력한 방어,공격 능력, 그리고 태권도에 대한 폭넓은 전문지식과 무도인으로서의 인격을 갖춘자만이 고단자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고단자가 되기 위한 심사의 의미와 실제 적용할 기준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태권도 정책 결정자들의 용단을 기대한다.

「도덕,예절 교육을 담당할 새로운 효과적 대안으로서 태권도를 활용하자」는 세계적으로 거의 모든 나라들이 자기나라 아동 및 청소년들의 도덕성 쇠퇴로 고민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히 앞으로 전개될 정보화사회의 폭력적인 비디오게임 및 영화 등의 보급으로 빠르게 확산될 일탈행동의 극복을 위해서 태권도 수련의 새로운 사명을 부각시키자는 것이었다.

하나의 성공적인 사례로 미국의 이준구 태권도 국제지도재단이사장이 추진해온 <규범의 기쁨> 프로그램을 제시한바 있지만,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전세계에 보급하면, 태권도의 효용성과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태권도 싱크탱크(Think Tank) 자문팀을 운영하고 태권도의 세계화를 위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자」는 것은 세계화시대에 대비한 비젼있는 태권도 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인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자는 것이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 태권도계를 이끌어 온 태권도 단체 간부들의 업적과 성과를 누구나 인정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태권도 지도자들이 좀더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관련 인사들의 중지를 광범하게 모아 태권도 발전을 위한 백년대계 수립에 착수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특히 대학에서 태권도 전공 학도들도 양성하고 있으므로, 국내용의 태권도 전문인력만이 아니라 세계화시대에 대비한 국제적인 태권도 전문인력을 양성하여야겠고, 세계 각국의 무도를 연구할 유학생을 해외로 파견하여 지역 전문가 육성에 역점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주]

1) 국기원의 1999년 12월 현재 통계.

2) 송재헌, "무도본산의 위엄도 예의도 철학도 없다", [월간조선] 2000년 11월호, pp.456∼463.

3) Robert E. Valett,「Affective-Humanistic Education」, Belmont California : Lear Siegler, Inc, 1974. p.48.

4) 태권도정신의 역사학적인 접근을 시도한 대표적인 전문가로는 이종우, 정찬모, 이진수, 양진방을 꼽을 수 있고 철학적인 접근에 대해서는 한승조, 김용옥, 이창후를 들 수 있다. 태권도정신 지도방법론에 대해서는 여러 전문가의 공저인 국기원의「태권도 교본」이 구체적인 방향제시를 하고 있고, 태권도의 5대 정신으로는 예의, 염치, 인내, 극기, 백절불굴이 사용되고 있다.

5) 정세구, "태권도발전을 위한 제언",「계간 태권도」, 제69호(1989. 6. 여름). pp.99∼103.

6) 정청희, 김병준,「Sports심리학의 이해」, 도서출판 금광, 1999. pp.29∼49.

7) Fay Goodman,「The Ultimate Book of Martial Arts」, Lorenz Books, 1998. pp.12∼23.

8) 박지원 전 문화부장관이 2000년 3월 28일 한국체육대학교에서 발표한 내용(대한태권도협회,「월간 태권도」No.138, 2000년 5월호. pp.68∼69.)

9) 백순근(편),「수행평가의 이론과 실제」, 원미사, 1998. pp.29∼36.

10) 1999년 10월 4일∼8일 동아일보에 실린「일본의 교육위기」시리즈 기사

11) Thomas Lickona,「Raising Good Children」, Bantam Books, 1983(정세구(역),「자녀와 학생들을 올바르게 기르기 위한 도덕교육」, 교육과학사, 1994. pp.20∼23.

12) 이준구, "21세기 한국인의 사명",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문화의 세계화」, 1995. pp.309∼310.

13) 이진수,이학래,박진경,이경옥, "체육학 연구의 동향과 전망", 한국학술단체연합회,「한국학술연구의 동향과 전망」Vol. II-2, 2000. pp.293∼432.


출처 : 대한태권도협회 정세구 / 서울대학교 국민윤리교육과 교수 겸 태권도부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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