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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일지

수련생을 가려받아서는 안되겠지.

by 태권마루 2008. 1. 5.

어제 수련생들과 체험을 다녀와서 꿀맛 같은 늦잠을 자고 일어나 잠에서 덜 깬 채로 뒹굴뒹굴하고 있는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태권도 몇 시부 있어요?"

아무런 언급 없이 다짜고짜 하는 질문에 당황했다. 눈썰매 때문에 학부모님들이 도장으로 전화할까 봐 도장 전화를 핸드폰으로 연결해 놓고 미처 풀지 못해 도장으로 걸려온 전화가 내 핸드폰으로 연결된 것이다.

인사나 소개도 없이 다짜고짜 질문하는 것이 황당했지만.... 설명해 줄 수밖에...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00시 부가 있어요..."

옆에 친구가 같이 있었는지 친구와 의논하기 시작한다.
기다리라는 말도 없이

"야 몇 시부 있데...."

얘기하더니 친구와 소통이 잘 안 됐는지 짜증 부리며

"아~ 진짜 고등부가 아니라 중등부라니까...."

1분가량 그들의 멍청해 보이는 상의를 듣고 있어야만 했다. 화가 나기도 하고, 뭐 이런 전화 예절이 없는 녀석들이 있을까.. 요즘 애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건 완전 무개념 아닌가... 싶어 끊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다.

상의가 끝났는지 다른 걸 물어본다.

"회비 얼마에요? 옷값은요? ~ 예, 알겠습니다."

하고 바로 끊는다.

이런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저 어이없는 짧은 통화였다고 밖에.....

전화를 받기 전 '뉴하트' 라는 요즘 하고 있는 의학 드라마를 봤는데 거기서 의사가 "환자를 입맛에 맞게 골라 받는 건 의사가 아니다." 라는 류의 말을 했었다.

마음 속 한편에서는 이 아이들이 도장에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겨났지만, 이런 아이들을 바로 잡아주는 교육을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닌가 하는 스스로의 채찍도 들어본다. 그 드라마 속 의사 말처럼 수련생을 가려 받는 것도 무도를 지도하는 사람이 할 짓은 아니니 말이다.

지금 도장에도 빗나간 길을 걷고 있는 중2 여학생이 하나 있는데 녀석의 소질을 본 후에는 이 아이를 바로 잡아 시합에도 내보내고 운동으로 대학에도 보내고 싶다는 마음에 열심히 지도하고 있다. 하지만 운동을 가르치는 능력에 비해 사람을 가르치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여 고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이 순간은 아까 전화 온 녀석들이 꼭 도장에 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또 커지고 있다. 녀석들을 바로 잡아보겠다는 생각보다 그런 아이들을 자꾸 접하고 이끌어 보면서 경험을 하고 공부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생각이겠지만 물론 그 과정에 그 아이들이 개선된다면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그 아이들이 삐뚤어졌다거나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내 어찌 짧은 통화만으로 그들을 판단하고 폄하할 수 있겠는가! 단지 내가 지도하게 될 수련생들의 잘못된 행위를 바로잡아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하는 의도에서 그 통화를 빗대어 쓰는 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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