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범일지

사춘기 아이들을 나무랄 때는 사무실에서 상담하자!

by 태권마루 2012. 9. 13.

몇 개월 전 B 도장에서 수련하던 6학년 여학생이 이사를 오면서 B 도장의 추천을 받아 우리 도장으로 오게 되었다. 운동능력이 뛰어나 열심히 가르쳐 태권도대회에서 좋은 성적도 거두었다.

 

그런데 이 L양은 수업시간에 하는 시늉만 하고 뭘 시키면 하는 둥 마는 둥… 열심히 하라고 하면 "왜 저한테만 그래요?"라며 말대꾸도 잘한다. 잘못을 지적하면 무척이나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니라고 우긴다. 지도하는 측면에서 보면 밉상스러운 아이다.

 

어제 수업 시간에 앉았다가 일어서며 점프하는 하체 운동을 하고 있었다. 또 요령을 피우고 있길래 유심히 보다가 다가가서 왜 그렇게 하느냐고 똑바로 하라고 했더니 역시나 말대꾸를 한다. 계속 내버려두면 수업할 때마다 눈에 가시같이 보일 것 같아 찍소리도 못하게 엄하게 야단을 쳤다.

 

그런데 수업이 마치자 한쪽 구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평소 깡다구가 있어 잘 울지도 않는 녀석이라 달래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여기서 달래주거나 약한 모습 보이면 안 될 것 같아 못 본 척 지나쳤다. 차량운행을 기다리는 아이들도 있어서 그냥 나왔지만, 마음이 내내 불편했다.

 

L양의 집은 걸어서 가기에 힘든 거리라 평소에 차량을 이용하는데 기다려도 나오질 않는다. 잠시 후 "걸어가요." 라는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이 문자 하나가 일순간 많은 감정을 전달하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한창 사춘기에 접어들 감수성 민감한 시기에 꼬맹들이 앞에서 그렇게 무안을 당했으니 상처받았겠지? 마음이 편치 않아 곧바로 L양의 어머님께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아이들 앞에서 그렇게 혼낸 것이 마음에 걸리고 나의 잘못이라고 사과했다.

 

L양의 부모도 마침 나에게 전화하려고 했던 참이었다며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 나의 진심을 느끼고 어머님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내일 잘 다독여 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L양은 지금까지도 자기가 왜 혼났는지 모르겠다고 했단다.

 

그래! 나는 야단만 쳤지 바로잡아주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늘~ 시간에 쫓긴다는 핑계로 제대로 된 상담조차 해보지 않았었다. 무엇보다 L양이 민감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아이들을 상대하고 가르치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을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어제 화내면서 "태권도장은 사범님의 지도에 따라 전체가 수련하는 공간이다. 사범님 말 안 듣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거든 도장에 올 필요 없다. 여기는 혼자서 운동하는 곳이 아니라 지도자의 지도에 따라 운동하는 곳이다."라고 호통치며 진짜 L양이 도장에 나오지 않아도 좋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내내 마음에 걸려 돌이켜보면 그런 아이들이 따라오며 운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또한 나의 몫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부끄러워진다.

 

오늘 L양이 태권도에 꼭 와주었으면 좋겠다. 어제 일을 사과하고 악수하면 어제까지의 앙금이 오히려 깊은 정으로 쌓일 것만 같다. 이 일로 상처받아서, 나와 도장을 미워하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들 모두 잘 알고 있지만, 일순간 절제력을 잃고 그 자리에서 윽박지르는 실수를 자주 범하곤 한다. 아이들에게 예절과 인성을 가르치고 인내심을 키워야 한다며 온갖 힘든 훈련을 시키면서도 정작 스스로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우리는 떳떳할까?

 

오늘 그런 내 모습을 내 제자이기도 한, 우리 사범도 지켜봤다. 사범과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도장에 늦게 출근하고 수업시간에 말로만 떠드는 것만이 나태한 것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고 상담하면서 나쁜 습관과 잘못을 고쳐주려하지 않고 매와 벌로 바로잡으려 하는 것도 나태함인 것이다.

 

나의 나태함으로 한 소녀의 가슴에 상처가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니좀 신중했어야 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