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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일지

아쉬움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by 태권마루 2010. 7. 8.

6월 말과 7월을 거치면서 최소한 4명의 수련생이 퇴관했다.

고등부의 L 군은 내가 이 도장에 처음 왔을 때부터 함께 있었던 수련생으로 중학교 때부터 고3이 될 때까지 함께 있었다. 몇 년간 결석도 거의 하지 않을 만큼 성실히 도장에 다녔고 타고난 운동 신경은 없었지만, 꾸준히 한 탓에 실력도 참 많이 늘었던 녀석이다.

오랜 시간이 말해주듯 중·고·일반부를 지키는 터줏대감이었다. 다 괜찮은데 L 군은 게임을 너무 좋아하고 그 때문에 어딜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집에서 게임하는 것이 가장 큰 낙으로 보였다. 그리고 어쩌면 오래 다닌 탓인지 운동할 때 활력이 떨어지고 건성으로 하는 날이 많았다.

이제 고3이고 실업계라 2학기부터는 취업을 나간다고 하여 도장을 그만둘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힘들게 체력운동을 하던 시간에 장난 반으로 엉덩이를 살짝 때리며 더 열심히 하라고 타일렀다. 자기 딴에는 노력하고 있는데 또 그러니 순간적으로 욱했던 것 같다.

"아이씨~ 열 받아~" 하면서 투덜거렸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 또한 상이 돌아갔지만, 일단 수업을 마쳤다. 수업을 마치고 수련생들을 앉혀놓고 운동을 힘들게 시킨 이유와 어른에게, 사범님에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마무리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평소 차를 타고 귀가하던 녀석이 걸어서 가버린 것이다. 버릇없는 행동에 화가 났지만, 한 편으로는 이해도 돼서 그냥 넘어가고자 했다. 다음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수업을 했지만, 수련 시간 내내 우린 서로 말이 없었다. 수업 마치고 상담을 하려 했으나 타이밍을 놓쳤다. 그리고 다시 다음날 L 군의 아버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제 하기 싫어한단다.

나는 이유를 알기에 별다른 할 말이 없었다. 곧 취업을 나가면 주야 교대로 일하게 되어 운동할 여유도 없을 테니 붙잡을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그래도 수년을 자기를 가르쳤는데 아버지를 통한 전화 한 통화로 이렇게 연이 끊어져야 한다는 것에 배신감 같은 것이 밀려들었다.

수련생 하나 그만두는 것이야 늘 반복되는 것이니 아무것도 아니라지만, L 군의 청소년기에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서 이 정도 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에 힘이 쭉~ 빠졌다. 오래 가르쳤기에 그의 인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텐데 내가 제대로 지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J양은 4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2년여를 다녔다.

길을 가다 어머님을 만났는데 이제 검도를 하러 가겠단다. 최근 도장에서의 활동을 볼 때 감이 오더니 역시나 퇴관으로 이어졌다. J양의 어머님은 인근 도장이 서비스하는 어머니 교실에 끊임없이 다니시는 분이다. 처음에 어머니 합기도 교실에 다니셨다. 그때 J양은 합기도를 다니며 2단까지 취득했다.
그리고서 어머님은 어머니 태권도 교실에 다니셨다. 그때 J양은 우리 도장에 다니기 시작했고 최근에 2품을 취득했다. 몇 개월 전부터 어머님이 어머니 검도교실에 다니셨단다. J양은 이제 검도장에 다니기로 했다며 그동안 잘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인사하셨다.

합기도를 그만두고 나서 합기도 사범님이 인사도 제대로 안 받아 줘서 J양이 많이 힘들어 했었다면서 태권도 사범님은 인사를 잘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한가지 운동에 정통한 것이 가장 좋지만, 이런저런 운동을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마무리 지었다.

아쉽지 않지만, 아쉽다. 화나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배신감도 느껴지고 덕분에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운동하는 어머님이 얄미워지기도 했다.

소리소문없이 그만두는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들지는 않지만, 이렇게 좀 오래 다니거나 유독 아끼거나 가깝게 지낸 수련생이 그만두면 참 많은 감정이 드는 것 같다.

Y 군과 동생은 타지역에서 이사를 오면서 우리 도장에 등록했다.

이전에 다니던 도장의 관장과 친분이 있어 얘기를 나눴더니 약간 4차원 적인 아이라고 귀띔해줬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여동생은 이쁘고 열심히 잘 따라 했는데, Y 군은 유독 이상한 말과 행동이 심했다. 때로는 그런 행동으로 많은 아이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싫어했다. 어찌 보면 왕따처럼 말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아이들과 다툼도 많았고, 사무실에서 혼나는 경우도 많았다.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아주 작은 실수조차 놓치지 않고 옴짝달싹 못 하게 구박했더니 결석이 잦아지면서 급기야 일주일이 넘도록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전화했더니 사범님이 억울하게 혼내서 다니기 싫다고 했단다. 이상한 행동을 다잡기 위해 일부러 좀 강하게 나갔던 것이 부작용을 일으켰다. 대처방식이 잘못된 것이었다. 어머니와 상담을 통해 다시 보내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다시 전화하니 아이들밖에 없길래 Y 군과 통화했다.

좋은 말로 잘 구슬리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나의 실수를 인정하고 도리가 없겠다 싶어 잘 지내라는 말을 했는데 대꾸도 없이, 전화를 강하게 끊어 버렸다. 그 순간 내가 왜 제자에게 전화해서 이런 수모까지 당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자존심이 팍~ 상하는 것 같았다.

며칠 사이 수련생들이 연속적으로 퇴관하는 과정을 겪으며 참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무엇보다 내가 참 부족하다고 느낀 것은 위의 4명의 아이들 모두 곧 그만두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관장은 도장을 경영하는 사람이다. 사범의 임무와 함께 사업자로서 회원을 잘 관리할 줄도 알아야 한다. 운동 지도하는 것도 그저 그렇고, 회원 관리나 학부모 상담도 꽝이고.... 한때 나는 스스로가 A급 사범이었다고 여겼지만, 지금의 나는 C급 관장인 것 같다.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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