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를 드는 순간 나는 나태해진다. :: 2008/12/07 21:48/사범일지
태권도 사범으로 처음 도복을 입었을 때 K관장님이 "몸둥이를 들고 아이들이 잘 따르도록 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정말 뛰어난 지도자는 말 한마디로 아이들을 일사분란하게 이끌 수 있는 지도자다."라고 말씀 하셨다.
흔한 얘기지만 나에게는 생소한 얘기였다. 대학에서 후배들을 지도해 본 적은 있지만 어린 아이들을 지도해 본 적이 없는 나는 그런 일을 생각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A도장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커가는 과정에 매를 든 적이 거의 없다. 매를 들 필요도 없이 아이들이 잘 따라주었기 때문이다. K관장님이 평소에 워낙 아이들을 잘 교육해 놓았던 탓이다. 지금 도장에(이하 B도장)에 와서 처음에 가장 놀란 것은 도복입은 수련생을 찾기 힘들만큼 옷차림이 제각각 이었다는 것이고, 품띠들이 품새를 잘 모른다는 것, 마지막으로 예의와 질서가 형편없다는 것이었다. B도장을 나의 스타일로 이끌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사랑의 매로 쓰이던 낡은 죽도를 버린 것이다. A도장에서 배운대로 나는 수련생들에게 매를 들지 않고자 마음 먹었었다. 그런다음 도복과 단체복을 입도록 하였고, 예의와 질서를 틈나는대로 강조하였다. 그런면에서 많이 좋아지긴 했는데 품새만큼은 여전히 잘 안된다. ㅡ,.ㅜ; 아무튼 나는 A도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아이들을 잘 다룰 수 있는 자신감이 충만했었다. 자신감만큼 나는 매를 들지 않고도 성공적으로 아이들을 지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제 3년이 흘렀는데 요즘들어 매를 찾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매의 편리함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공식적으로 매를 꺼내드는 날은 1. 질서와 예의에 크게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때, 2. 싸움을 하거나 위험한 행동을 했을 때, 3. 대회나 심사와 같이 특별한 목표가 있는데 열심히 하지 않을 때... 딱 이 세 가지의 경우뿐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떠든다고 매를들고, 품새 못 외운다고 매를 들고....매를 들지 않으면 구레나루를 잡아 당긴다든지 하는 체벌을 가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벽보고 반성하고 서 있기는 잊은지 오래되었다. 사실 이 벽보고 반성하고 서 있기가 한 번의 매 질보다 효과적인데 말이다. 잘못을 한 수련생을 벽쪽으로 보도록 하여 서 있는 동안 무엇을 반성하였는지 물어보고 자신의 잘못을 모르면 다시금 벽 쪽으로 돌려세우는 방식이다. 이 때 나머지 수련생들에게 재미있는 수업을 하거나 뭔가 열심히 하는 소리를 들려 준다면 어서 빨리 함께 하고 싶어 그 문제의 수련생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되는 아주 효과적인 '벌'이다. TV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 '생각하는 의자'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만들어낸 것이다. 매를 들지 않고도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도록 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중고등부에게는 더욱 매 질이 잦아 졌다. 아예 지각하면 한 대, 결석하면 세 대... 정해놓기도 했다. 그런다고 변하는 것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말이다. 반성해야 한다. 오히려 내가 스스로 벽을 보고 서서 왜 매를 들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은 내가 나태해졌기 때문이다. 모범을 보여 따라하도록 하고, 말로 잘 타이르며 감싸안고 깨우치기를 기다리기 보다 발바닥 한 대 때리고 그 순간 즉각적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고자 하는 욕심과 게으름이 불러온 나태인 것이다. 나는 늘~ 게으른 나 자신을 질타했지만 천성이 그러한지 좀처럼 게으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이제는 수련생에게 툭 하면 매를 들고 휘두르는 불상사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누구처럼 막무가내로 휘두른 적은 없다. 다만 매를 들지 않고도 충분히 지도할 수 있음에도 그러하니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매 질을 하여 수련생들에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을 가르치고자 하는지 나 뿐만 아니라 매를 휘두르는 많은 지도자들이 생각해 볼 일이다. '사범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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